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가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여기에 관여한 국가정보원 요원들의 다소 허술했던 처신이 공개됐다.
뉴욕 남부연방검찰이 16일(현지시간) 공개한 31쪽 분량의 공소장에는 주미 대사관 등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들이 수미 테리에게 고가의 명품가방과 옷을 선물하고,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 등이 사진과 함께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정보 활동임에도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 보안을 철칙으로 삼는 국정원 요원이라고 보기엔 너무 어설프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공소장에 따르면 국정원 요원은 2022년 6월 16일 국무부에서 열린 비공개회의에 수미 테리가 참석했을 때 회의가 끝나고 나온 그를 바로 외교관 번호판을 단 차에 태운 뒤 회의 내용을 넘겨받았다.
비공개회의임을 알고 그 내용을 넘겨받으면서도 국무부 앞에 한국 외교관 번호판을 단 차를 대고 수미 테리를 태운 것이다.
명품을 선물하는 과정에서도 주변에 대한 조심성은 없었다.
수미 테리를 담당한 국정원 요원은 2019년 11월 13일 메릴랜드에 있는 한 매장에서 2845달러짜리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구매하면서 외교관 지위에 따른 면세 혜택을 받았고, 수미 테리의 계정으로 구매 기록을 남겼다.
이 요원은 같은 날 워싱턴 D.C에 있는 다른 매장에서도 2950달러짜리 보테가베네타 가방을 자신의 신용카드로 구매했다.
이 자리에는 수미 테리가 함께 있었고, 요원이 계산을 마치자 그 가방을 들고 나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2021년 4월 16일에도 국정원 요원이 워싱턴 D.C의 한 매장에서 3450달러짜리 루이비통 가방을 계산하는 동안 수미 테리가 옆에 서 있는 모습이 CCTV 화면에 담겼다.
쇼핑을 마친 두 사람이 탑승한 차에는 한국 대사관에 등록된 외교관 번호판이 달려 있었다.
공소장에 등장하는 국정원 요원들은 신분을 위장한 채 첩보를 수집하는 '블랙' 요원과 달리 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하는 '화이트' 요원이다.
그렇다 보니 수미 테리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며 만나야 하는 인물은 아니었던 만큼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책 입안 과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문가들을 상대로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정보기관이 하는 정상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정원의 활동만이 미국 수사망에 포착됐다는 것은 그만큼 어설펐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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