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국지성 집중호우로 경상북도와 충청남도 13개 지역에선 동시다발적으로 산사태가 발생해 26명이 숨지는 등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경북 예천군 주민들은 갑자기 내린 비에 토사가 쏟아지자 긴급히 '산사태 대피소'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장취재 중에 만난 수재민들은 "토사가 어디로 흘러 내려올지 모르니 정말 무방비 상태였다", "대피할 곳이 없다보니 우선 대피소를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쏟아져 내린 흙더미는 산사태 대피소로 지정된 은풍면 금곡1리 경로당 바로 옆까지 내려오거나, 감천면 벌방리 노인복지회관 바로 뒤까지 덮치기도 했습니다.
금곡2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대피소도 안전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흙이 죽처럼 변하는 '산 홍수'…산사태 대피소도 위험하다 (지난해 7월 21일, <뉴스9> 보도)
◆ 감사원 "일부 대피소, 산사태 위험지역에 위치"
산림청이 지정한 대피소가 안전하지 않고 오히려 불안하다는 건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드러났습니다.
감사원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산사태·산불 등 산림재난 대비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림청이 지정·관리하는 대피소 2만 5384개소 가운데 2164개소(8.5%)가 산사태 위험구역 내에 위치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경북 예천군 효자면 도촌리 일대에는 산사태 위험구역 밖에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상리초등학교가 있는데도 위험구역 안에 있는 마을회관을 대피소로 지정하는 난맥상도 드러났습니다.
'산사태 위험구역 내 위치한 취약지역 대피소 사례' (자료 : 감사원, 빨간색 부분이 산사태 위험구역)
위험하니 대피소로 빨리 대피하라는 전파 체계도 미흡했습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예천군에선 지난해 7월 15일 산사태로 주민 2명이 숨졌는데, 위험이 예측됐고 이에 예천군도 산사태 경보를 발령했지만 사전에 주민 대피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실질적인 대피가 이뤄지지 않았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 "산사태 발단은 임도(林道)"
수재민들은 산사태 발생 원인으로 '임도'를 지목했습니다.
감천면 진평리에서 만난 주민은 "임도에서부터 흙더미가 유출돼 산사태가 시작됐다"고 했습니다.
임도는 산불 진화용 도로로 쓰거나 임산물 운반 등 산림 관리를 위해 만든 폭 3m짜리 도로입니다.
나무를 잘라내고 산자락에 인위적인 도로를 만들다 보니, 실제로 2020년 충주 상산마을 산사태의 원인으로 지적된 바 있습니다.
위험성은 감사원이 2019년부터 2023년 11월까지 북부지방산림청(춘천 등 6개 국유림관리소)과 경상북도에 신설된 임도 559개소를 점검한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산사태 취약지역을 지나는 임도 109개소 중에 88개(80%)는 별도의 방재시설 없이 설치됐던 겁니다.
88개소 중에 29개는 사방댐 등 사방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아 산사태 발생 시 인명과 재산피해 우려가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습니다.
◆ 모든 걸 앗아간 산사태…재발 방지하려면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취약지역 주민들은 안타깝게 숨졌고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 "산사태 위험구역에 있는 시설물을 대피소로 지정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기 바란다"며 산림청장에 '주의'를 통보했습니다.
이에 산림청은 23일 TV조선 질의에 "산사태 피해 범위에 있는 대피소는 피해 우려가 없는 안전한 곳으로 변경을 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새롭게 지정되는 대피소는 지정기준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지정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겠습니다.
산림청은 또 "임도 하단부에 민가 등 보호시설이 있는 경우에 재해예방시설을 설치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산이 죽처럼 변해서 작은 충격에도 이곳저곳으로 흘러내리는 '산 홍수' 등으로 기존 재난대응 시스템이 무력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한발 더 빨라야겠습니다. 올해 장마에는 부디 피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