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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취재후 Talk] 승복이 주는 감동, 불복이 낳는 더 큰 재앙

등록 2024.08.06 09:50 / 수정 2024.08.0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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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탁구 종목 국가대표로 2024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신유빈 선수(20, 대한항공)가 지난 3일 '동메달 결정 한일전'에서 일본의 하야타 히나 선수에게 패한 직후 했던 말은 "일본에 져서 죄송하다"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봐 온 이른바 '국민정서법'과는 배치된 발언이었죠.

심경을 묻는 질문에 신 선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를 이긴 상대들은 저보다 더 오랜 기간 열심히 묵묵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며 "인정하고 배울 점은 배우고, 저도 (그들보다) 오랜 기간 묵묵히 훈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경기에서 패한 뒤 도리어 일본 선수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며 '승자를 예우'했던 장면과 관련해선, "하야타를 오랫동안 봐왔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간절하게 경기했다"며 "그런 부분은 인정해주고 싶었다. 나도 더 단단한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축하 인사를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비록 결과는 아쉬웠지만 그에 승복하면서 훗날을 기약하고 승리를 다짐하는, 소위 말하는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보여줬습니다. 2004년 생으로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선수가, 자신의 나이에 비해 '차고 넘치는' 성숙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어른들이 보여주지 못한 어른스러움을 말이죠.

반면, 신유빈 선수 보다 '훨씬 더' 어른들로만 구성된 우리 정치권의 상황은 어떤가요?

/연합뉴스

물론 정치권에서 받는 '패배의 고통'은 운동 경기에 비해 더 고통스럽긴 합니다. 선수 개인의 패배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고 따르는 집단과 세력, 그리고 그들이 함께 추구하는 가치까지도 덩달아 '쓴맛'을 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불복했을 땐, 언필칭 더 큰 패배의 아픔이 뒤따랐습니다. 아쉬움은 남지만 패배를 담대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유로 충분했던 결과들이었죠.

지난 2021년 4월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했던 민주당 계열의 여권이, 선거 직전까지 논란이 됐던 장관 후보자들 임명을 강행하고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 없이 대선에 임한 결과는 '정권 교체'였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선 더 압도적으로 패배했습니다. 호남과 제주를 제외하고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한 건 경기 지역 뿐이었습니다.

국민의힘 역시도 정권을 가져온 이후인 지난 2023년 10월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17.15% 포인트 차이로 참패했음에도, 부정적 여론이 강했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하는 등 국정 운영 기조 변화 없이 지난 4·10 총선에 임했다가 더 뼈아픈 패배의 쓴 잔을 마시게 됐습니다.

반대로 패배를 승복하고 인정하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 더 단단한 선수로 거듭난 뒤, 그 다음 선거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린 정치인들도 있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뒤, "경선 패배를 인정한다,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 주요 이슈별 '스터디 그룹(싱크탱크)'을 만들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고, 중도층 민심 공략을 위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공약'을 앞세워 '대권 재도전'의 신호탄을 쐈습니다. 그 결과 정권 재창출을 해낼 수 있었죠.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승리 공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중도보수층의 여론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상황에 승복,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DJP 연합'을 탄생시켰고 결국 대권도 거머쥐었습니다. 차제의 정치 분위기처럼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서로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으로만 삼았다면, DJ의 '대권 사수'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신유빈 선수가 전해준 '승복이 주는 감동'은 여야의 유력 대권 후보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등 우리 정치권에 전하는 시사점이 있습니다. 국민들은 지금 신 선수를 비롯, 2024 파리올림픽에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선사한 멋진 감동의 무대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보다 감동적이고 더 어른스러운 '젊은 선수들'의 매력을 차고 넘치게 보고 있죠.

올림픽이 끝나면 정치권의 모습이 일반 국민들의 눈에도 다시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할 텐데요. 정치인들의 '쇼맨십(showmanship)'은 단언컨대,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으로 점철된 선수들이 전하는 감동 그 이상의 것을 전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연합뉴스

한 대표와 이 전 대표 공히 '뼈 아픈 패배의 기억'이 있는데요. 두 분 모두, "저를 이긴 상대들은 저보다 더 오랜 기간 열심히 묵묵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인정하고 배울 점은 배우고, 저도 (그들보다) 오랜 기간 묵묵히 훈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신유빈 선수의 발언에서 '활로'를 모색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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