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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앵커칼럼 오늘] 불통의 '난'

등록 2024.08.21 21:50 / 수정 2024.08.2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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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가 친구 권돈인과 함께 쓴 부채 그림입니다.

추사가 지초와 난초를 그리고, 권돈인이 맑고 고귀한 사귐,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찬미했습니다.

추사에게 난초 그림을 배운 대원군도 한 줄 붙였습니다.

굴원(屈原)의 시구 '가을 난초를 꿰어 노리개로 달았네' 에서 따왔지요.

고결한 난초 향기를 옷섶에 고이 간직한다는 뜻입니다.

난향(蘭香)을 그윽하게 누리는 것을 문향(聞香), '귀로 맡는다'고 하지요.

불교에선 '다른 이의 말을 귀담아듣는다'는 뜻으로 씁니다.

좋은 일에 주고받는 난에는, 이런 의미들이 두루 담겼습니다.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 김종인 씨가 박근혜 대통령 생일 축하 난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무수석실이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 차례 퇴짜를 놓고서야 받았지요.

정무수석이 독단으로 거절했다가 대통령 질책을 들었다는 해명이 긴가민가했습니다.

'삼고초려'에 빗대 '삼고초란'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2대 의원들에게 난을 보냈을 땐 조국 대표가 거절했습니다.

"거부권을 오남용 하는 대통령의 난을 정중히 사양한다."

조국당 의원은 '버린다'는 딱지를 붙여 내놨습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받았는데, 거절하느니만 못한 말을 했습니다.

"곧 축하를 후회하게 만들겠다."

조 대표는 대표로 재선출됐을 땐 난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연임 축하 난을 놓고 싸우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정무수석이 난을 전하려고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답이 없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은 전혀 사실이 아니랍니다.

"난 전달과 관련해 어떤 대화도 나눈 바 없다."

대통령실은 "책임 전가"라고 받아쳤습니다.

"이런 문제가 쟁점이 된다는 게 서글프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지켜보는 국민이 서글픈 건 맞습니다.

이제라도 조율하면 될 일을 서로 삿대질만 해대는 정치판에 오만 정이 떨어집니다.

'난초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했습니다.

향기는커녕 속 좁아터진 인간들의 악취에 질려, 난이 고개를 떨굴 지경입니다.

8월 21일 앵커칼럼 오늘 '불통의 난'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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