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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앵커칼럼 오늘]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등록 2024.08.30 21:50 / 수정 2024.08.3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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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는 하늘이 돕는다.' 호남 명필 안규동 님이 남긴 휘호입니다.

효(孝)자가 유난히 가늘고 여립니다.

사립문 앞에 나와 계신 어머니 모습입니다. 허리 굽은 노모가 지팡이를 짚고서 늙은 아들을 기다립니다.

효도란, 부모님이 기다리지 않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이어령 선생의 따님은 남캘리포니아 바닷가에서 살다 아버지보다 10년 앞서 떠났습니다.

그리움은 쌓여 아버지의 유고 시집, 마지막 시가 됐습니다.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있을까.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시집 서문입니다.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그렇게 딸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움도 오래되면 늙은 호박같이 단단해지는 걸까요.

'제 속 가득 저리 묻어두고, 이름도 주소도 없이 말라가고 있었다지. 사리처럼 박힌 단단한 그리움.'

25년을 하루같이 딸을 찾아 헤매던 송길용 씨도 사위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디 갔다 왔니. 어디 갔나 왔냐. 이쁘게 자랐다. 제발 좀 나타나줘, 응?"

여고 2학년 딸 혜희가 실종된 날, 아버지의 삶의 시계도 섰습니다.

함께 전국을 돌며 전단을 뿌리던 아내는 5년 만에 경찰 수사가 종결된 뒤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간 뿌린 전단이 천만 장, 내건 현수막이 만 장에 이릅니다. 늘 갈아줘서 새것 같은 현수막, 못 본 이가 드물 겁니다.

수많은 부모들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다들 함부로 현수막을 떼지 않았습니다.

선거철 플래카드도 그의 것을 피해 걸었습니다.

다치고 병든 몸 수술비와 현수막 제작비도 여기저기서 대줬습니다.

부모이기에 내 마음처럼 그의 심정을 헤아려준 것이지요.

그는, 혜희가 언니와 용돈을 모아 사준 첫 휴대전화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걸어온다면 거기로 걸 테니까요. 전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일흔한 살 혜희 아버지가 현수막을 싣고 가다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현수막을 걸어야 잠이 온다" 던 그가 눈인들 편히 감았을까요.

속 가득 안고 갔을 그리움을 감히 가늠하지 못합니다.

8월 30일 앵커칼럼 오늘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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