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추석 전 응급의학과 관계자들을 만난 곳도 응급실이 아닌 광화문의 한 중국집이었습니다. 꽤나 먼 곳에서도 와주셨고, 탕수육과 쟁반 짜장면을 나눠 먹은 2시간이 20분처럼 느껴질 만큼 후딱 지나갔습니다.
응급실이었다면 그분들이 “어디가 안좋으세요?” “얼마나 아프세요?” 묻고 저희가 답 했겠지만, 중국집에선 정반대였습니다. 저희 기자들은 질문을 쏟아내기 바빴고, 그 분들은 속에 쌓아놨던 말씀 하시기 바빴습니다.
여러 현안들에 대한 얘기가 오갔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여기서 밝히진 않겠습니다. 이번 사태엔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들의 생각을 여과없이 전달하는게 일방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몇 가지 제가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필수의료를 지켜왔다는 자긍심이 너무 많이 다쳤다”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란 쉽지 않겠구나” “상황이 꼬여도 너무 많이 꼬였다”였습니다.
물론 정부도 필수과 의료진의 처우 개선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가급적 큰 효과를 거두길, 저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마지 않습니다. 많은 국민분들도 “그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들의 답변에서 근본적인 한계, 어떤 거대한 벽이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의사로서 돈 벌 생각이었으면 다른 과를 갔겠죠.”
그러니까 이들이 호소하는 건 “돈” 보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마음이 너무 많이 다쳤다”는 겁니다.
솔직히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저로서는 완전히 공감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공감을 못하겠다고도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그저 알듯말듯 알쏭달쏭하게 안타까웠습니다.
젊은 의사들의 이런 마음을 “민심의 엄중함”이라 부를지, 아니면 “MZ세대의 이기심”이라 부를지는 각자 생각의 자유입니다. 다만, 사태를 해결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사실 의료계 많은 분들이 비슷한 얘기를 해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사태가 벌어진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자, 역으로 이를 해결할 가장 효과적인 해법으로 “젊은 의사들의 마음”을 언급하는 거죠. 이 부분이 풀려야 의료개혁과 의대증원과 필수의료를 놓고 꼬인 실타래들이 풀릴 길이 그나마 열린다는 겁니다. 거꾸로, 어찌어찌하여 정책 구상이 전부 실현이 됐다쳐도 정작 이를 실행할 이들이 요지부동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의료현장에서 벌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응급의학 관계자들이 “우린 전부 옳고 정부는 전부 틀렸다”고만 주장하신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의사집단이 국민과 소통 노력을 소홀히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솔직히 공부 잘하시고 많이 하신 분들 특유의 “이것도 몰라?”식의 태도, ‘의사 선생님들’ 사이 상당히 엿보이곤 합니다. (물론 일반화는 절대 아닙니다.) “의사 늘어나면 당연히 필수과 의사도 늘어나서 좋은 거 아닌가?”란 대다수 많은 국민들 생각을, ‘쉬운 말로’ 제대로 반박하는 걸 본 적이 있던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역시 “당신이 무식해서 그래”라 하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다시 중국집으로 돌아가면, 한 분이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들이 쓴 책이라며 제법 두툼한 한 권을 주셨습니다. 젊은 의사들이 응급실에서 겪은 일들을 엮은 건데, 원고료는 적지만 현재 곤궁한 그들 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더군요.
개인적으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입장이라서, 어떤 직업이라도 ‘과도한 자긍심’은 사양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추석 연휴 꼭 읽어볼 생각입니다. 저 역시 이른바 ‘의료공백사태 핵심 당사자인 필수과 사직 전공의들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은 했었나, 돌아보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덮어놓고 다 떠나서, 여야의정(의료계는 ‘의정여야’라 지칭)이든 여야환의정이든 아님 의정이 됐든 서로서로를 만나기부터 했으면 좋겠습니다. 추석 연휴 지나고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응급실 의사들이 기자들 만나러 저 먼데서 기차타고 광화문 중국집까지 오시는 일도 더는 없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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