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도 고물…영감님도 고물이고…다 됐어. 이젠 다 됐어."
암소 누렁이도, 여느 소의 수명 열다섯 살을 훨씬 넘어 마흔 살입니다. 평생 논밭을 일구다, 할아버지와 함께 마지막 땔감을 해 옵니다.
"소가 아프면서도 이걸 해 놓고 때라고, 불 때고 살라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 누렁이의 코뚜레를 할아버지가 끊어 줍니다.
"좋은 데 가거라."
누렁이에게 해롭다며 농약도 치지 않고, 쇠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던 할아버지, 누렁이 무덤 뒤에 할머니와 나란히 잠들었습니다. 누렁이 워낭도 함께 묻어 드렸지요.
"소는 어디 갔나요? 여기 있었는데, 이제 고기가 돼 버렸네요!"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은 소와 교감했습니다. "소의 입장이 된다는 건, 소가죽을 쓴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소가 되는 것이다."
그는 평화롭고 인도적인 도축장을 소의 입장에서 설계해 미국 전역에 보급했습니다.
엊그제 전남 장흥 풀로만 목장에서 늙은 암소 세 마리가 은퇴했습니다. '창립 멤버 은퇴식'을 연 목장주 조영현 부부가 요들송을 불러 줬습니다.
장흥 사는 소설가 한승원은 목초 값을 후원하는 봉투를 건네 축하했습니다.
조 대표가 13년 전 귀농하면서 들인 암송아지 중에 세 암소는 더 새끼를 밸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도축장으로 가는 운명을 벗었습니다.
새끼, 친구들과 어울려 여생을 보냅니다. 축사에 갇혀 있지 않고 3천 평 들을 한가롭게 거닙니다.
조 대표가 말했습니다. "목장을 위해 큰일을 해준 소들에게 신세를 갚으려 한다. 경제 동물로 일해 오다 반려동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한승원 소설은 이렇게 썼습니다. '소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보살행(行)이다.'
사람의 길과 소의 길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소가 먹을거리로만 의미를 갖는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사람과 소의 우정에, 첫눈처럼 푸근한 위로를 받습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11월 27일 앵커칼럼 오늘 '암소, 평화롭게 은퇴하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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