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용 씨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NYT는 송길용 씨가 딸을 찾는 애끊는 사연의 현수막을 거리마다 내걸었던 사연과 비극적인 가족 이야기를 집중 조명했다.
NYT는 12일 자 '그의 딸은 1999년에 실종됐다. 그는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는 기사에서 '대한민국 전역에 펄럭이는 파란색과 노란색 현수막에는 부드러운 눈빛과 단정한 단발머리를 한 17세 소녀의 미소가 시간 속에 멈춰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고 써내려갔다.
송 씨는 최근 딸을 찾지 못한 채 교통사고로 숨졌는데, NYT는 그가 골목마다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을 달고, 트럭을 타며 전국을 누비며 전단을 나눠주었다고 전했다.
송 씨의 친구이자 '전국 미아·실종 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회장인 나주봉 씨는 "그는 항상 딸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면서 "그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언젠가는 딸의 손을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씨의 딸인 송혜희 씨는 송탄 여자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9년 2월 13일 오후 10시쯤 경기도 평택시 자택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실종됐다.
송 씨 부부는 전 재산을 털어 전단과 현수막을 만들고, 딸 사진이 붙은 화물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았다.
이들은 담배와 라면 등으로 연명했으며,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전단을 꺼내서 다시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딸을 찾지 못하자 우울증을 앓던 송 씨 아내는 딸 실종 5년 뒤 품 안에 딸 얼굴이 담긴 전단을 안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 씨도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지만, 큰 딸이 만류해 살아남았다.
2014년 2월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그러다 2018년 큰 딸이 자신이 아버지에게 빌려준 트럭을 '자기 파괴적인 집착을 끝내라'며 폐기했다.
그러자 송 씨는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받은 돈으로 다른 트럭을 구입했고, 큰 딸과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지인들은 이 무렵 송 씨가 혜희가 살아 있는지 의심하고, 큰 딸과의 관계가 깨져 슬퍼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송 씨는 2017년까지 약 50만 마일(약 80만㎞)을 주행하고 300만 개의 전단을 배포했으며 2500개의 현수막을 걸었다.
그는 2020년 한 인터뷰에서 "현수막을 걸고 전단을 나눠줄 때 가장 행복하다"면서 "이게 집착처럼 보이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 씨는 지난 8월 코로나19와 심장병으로 입원했고, 며칠 뒤 평택에서 운전하다가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오던 차량과 충돌해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NYT는 "한국 경찰은 실종자가 8세 미만인 경우에만 실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혜희를 (처음엔) 가출자로 분류했다. 그 기준은 나중에 높아졌지만, 경찰의 초기 대응으로 인해 송 씨와 그의 아내는 스스로 딸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NYT는 또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한 한 아버지의 25년간의 노력을 보여준 송 씨가 부모의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국가적 상징이 되었다"며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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