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김지미 씨의 일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당대를 대표하는 신여성으로도 이름을 떨치면서,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박소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김지미는 자유 연애와 네 번의 결혼으로 보수적이던 당시 사회상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세간의 눈치를 보지 않는 당찬 행보가 대중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면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김지미는 18세이던 1958년 홍성기 감독과 결혼했다가 4년 만인 1962년 이혼했고, 곧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이자 유부남이었던 최무룡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직 간통죄가 남아있던 시절이어서 두 사람은 최무룡의 아내에게 위자료를 지급한 후에야 구속 상태에서 풀려났습니다.
이후 김지미는 당시 가요계 아이콘이었던 나훈아와 사랑에 빠졌고, 1982년까지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극적인 사생활과 거침 없는 행보는 늘 대중의 관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지만 정작 그는 "나이 많은 사람과도 어린 남자랑도 살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남자는 없더라"며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고 회고했습니다.
영화계에서 그는 100년에 한번 나올 특별한 배우이자 웬만한 남자보다 통이 큰 '대장부'로 회자됩니다.
김지미
"배우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해라… 아무데나 허튼 취급을 받도록 자기 명예나 이름을 팔고 다니지 마라…."
영화 팬들은 한국 영화사의 또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며 김지미의 별세를 애도했습니다.
TV조선 박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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