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서울 거리의 우상과 허상

등록 2018.11.20 21:47

수정 2018.11.20 21:51

3년 전 김일성 생일에 맞춰 북한 노동신문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김일성을 이렇게 찬양했다고 썼습니다. "김 주석은 워싱턴, 제퍼슨, 링컨 대통령을 합친 것보다 위대하고, 세계 건국자들과 태양신을 다 합친 것보다 위대한 인간 운명의 태양신이다"

노동신문은 지난달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김일성을 "현세의 하느님"으로 칭송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중에 가장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꼽히는 카터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기독교 지도자였던 그레이엄 목사에게 이보다 황당한 얘기도 없을 겁니다.

그런 북한에게 서울 도심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김정은 환영행사만큼 절묘한 우상화 소재가 또 있을까요. 아닌 게 아니라 북한 매체들이 "온 남녘 땅을 환희와 격정의 물결이 휘감고 있다"며 선전에 나섰습니다. "플래카드와 꽃묶음을 든 사람들이 행진하며 '김정은'과 '만세'를 연호한다" "어디를 봐도 절세의 위인을 모실 날을 오매불망 고대하는 절절한 마음들을 읽을 수 있다…" 북한은 이번 환영 물결이, 광복 직후 서울에서 좌익 인사들이 김일성 환영준비위원회를 결성한 지 70여년 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 민간 통일단체가 초등학생들에게 김정은 환영단 참가 신청서를 받았다며 학교 측이 항의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엊그제 김정은 환영단체가 연 도심 행사에서는 "젊은 지도자가 세계 패권국 미국을 제압한 것을 보면 천리안을 가진 것이 아닐까"라는 연설도 나왔습니다. 카터와 그레이엄에 관한 노동신문 주장에 버금가는 수준입니다.

북한이 발간한 기록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해방 직후 김일성 장군님이 서울에 개선한다는 소문이 퍼져 수십만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이 선전하는 서울 도심 풍경은 북한이 완전히 날조한 얘기도 아니어서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다시금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월 20일 앵커의 시선은 '서울 거리의 우상과 허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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