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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동해안 산불의 진짜 영웅들

등록 2019.04.08 21:46

수정 2019.04.08 21:55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이제는 봄이 와도, 내 손에 풀들이 자라지 않아…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 종소리도 듣지 못한다."

2005년 식목일에 천삼백 년 고찰, 양양 낙산사가 산불에 휩싸였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550년 된 보물 동종도 속절없이 녹아내려 이렇게 잔해로 남았습니다. 낙산사는 이제 많이 복구됐습니다만 흙 한 줌, 풀 한 포기까지 원래 모습을 되찾으려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야 합니다.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는 시인의 탄식처럼 우리네 마음 속 낙산사는 동종 소리와 함께 소멸돼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 강원 동해안을 덮친 산불은 훨씬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처럼 도시 주택가, 고속도로 휴게소, 해변 캠핑장까지 몰아닥친 경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건조한 날씨, 강력한 계절풍, 인화성 강한 침엽수 산림까지 캘리포니아와 동해안 산불은 닮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벼락이 일으키는 자연발화가 적지 않은 반면, 우리는 사람의 실화가 99%, 사실상 전부입니다. 이번 고성 산불도 인재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 사람이 희망이고 위안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달려온 소방관 3천여 명이 25kg이나 되는 장비를 메고 화마와 맞섰습니다.

한밤중 LPG 충전소에서 소방관 다섯 명이 주택가로 번지는 불길을 막느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영웅적이었습니다. 산림청 진화대원들은 산속 깊이 들어가 불길과 육탄전을 벌였습니다. 강원 진로교육원 교직원들은 투숙 중이던 중학생들부터 온몸 바쳐 대피시키고 불을 껐습니다. 배달원들은 오토바이로 노인들을 피신시켰고, 3천명 가까운 자원봉사자가 달려왔습니다. 이웃이 이웃을 챙겼습니다.

이런 국민에게 정부와 정치권이 보답하는 길은 생색내기 '말의 잔치'가 아니라 예산과 인력, 장비, 체제를 시급히 보강하는 것입니다.

4월 8일 앵커의 시선은 '동해안 산불의 진짜 영웅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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