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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이상한 주권침해 대응

등록 2019.07.25 21:44

수정 2019.07.25 21:56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흐느낍니다. 참담하게 잃은 딸을 그리워합니다.

"밤이면 하루도 안 우는 날이 없어요. 이날 이때까지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파요…"

소련의 야만적인 대한항공 007기 격추로 피붙이를 잃은 지도 36년. 해마다 기일이면 천안 망향의 동산 위령탑에 유가족들이 모입니다. 수십 년 세월이 흘렀지만 가슴속 피멍울은 그대롭니다.

"목표물에 접근하고 있다. 조준 완료. 목표물이 격추됐다…"

1983년 소련 영공으로 잘못 들어간 KAL기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우리 국민 백다섯명을 비롯한 2백예순아홉명이 숨졌습니다. 소련당국이 민간 여객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전투기 보고를 무시하고 격추명령을 내렸다는 것이 국제기구 조사결과였습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9년 뒤 소련이 붕괴된 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범죄적 소련체제가 무너졌으니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사흘 러시아가 하는 행태를 보면서 과거 일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공 침범 직후부터 러시아는 일관되게 침범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도리어 "한국 공군이 공중 난동을 부렸다"고 했습니다. 어제 오전 보내온 공식문서에서는 "또 항로를 방해하고 위협하면 대응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놨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러시아대사관 무관이 한 말이라며 "영공 침범을 인정하고 깊은 유감을 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사과한 적 없다"는 러시아 정부와 대사관 반박이 이어졌습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습니다.

심리학 용어 '확증편향'은 자기 생각과 같은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가리킵니다. 청와대가 대령급 차석 무관의 말을 사실로 믿고 싶은 나머지, 덜컥 국민 앞에 들고 나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국방장관은 어제 입장문에서 일본만 질타하고 러시아 중국에게는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중국 역시 "방공식별구역을 비행할 자유가 있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눈치 보이고 겁나는 일이 많은 것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7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이상한 주권침해 대응'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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