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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깜깜이 방위비 협상…언론 소통 안 하겠다는 정부

등록 2019.10.28 20:34

[취재후 Talk] 깜깜이 방위비 협상…언론 소통 안 하겠다는 정부

23일(현지시간) 미국 호놀룰루에서 한국 측 수석대표인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협상 대사와 미국 측 수석대표인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협상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내년 이후부터 적용할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제2차 회의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비보도 전제로는 이야기 많이 해주려고 했지…"

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핵심 관계자가 28일 외교부 기자단 대상 브리핑 자리에서 앞에서 한 말입니다. 앞서 이 관계자는 '보도하지 않는다(오프 더 레코드)는 전제로만 기자들 앞에 나서겠다'고 했고, 기자들은 반발했습니다.

①"국민적 관심사가 큰 사안인데, 기사를 쓰지 말고 기자들만 정보를 알고 있으라는 뜻이냐."

②"과거 협상단은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 기자단에게 협상 상황에 대해서 알려 왔다."

③"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보도를 약속했다가는 당연한 내용이나 기존에 나온 내용조차 기사를 쓸 수 없게 된다."

④"비보도라는 것은 당국자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걸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기자들이 기사를 쓰겠다고 하면, 협상에 대해 말씀 드리기 어렵다"며,"언론에서 불편하실 수 있으니 오프(비보도)로 될 만한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안해주셨으면 고맙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기자들이 미국의 '6조원 요구' 보도나, 여당 의원이 주장한 '3억5천억원 요구'가 맞는지 물어도, 맞다 틀리다를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모두 이미 기사가 나온 내용들입니다.

한 기자가 '틀린 액수라면 정정해주고 알 권리를 충족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도 '그 역시 협상 내용에 포함되니 안 된다'고 했습니다.

▲ "한국 방위비 보도 많아" 美 불만?

결국 앞으로 10여차례 진행될 이번 방위비 협상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확인도 해주지 않은 채, 나중에 타결이 되면 언론더러 그 금액만 받아 쓰라는 말로 들립니다.

'미국은 안 그러는데, 한국 대표단은 왜 방위비 협상에 대해 언론에 흘리느냐'는 미국의 불만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한국 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 동맹국들과 전부 협상을 해나가야하는 미국과, 돈을 내라고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의 국민적 관심, 보도 수요는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최고위급 당국자들이 드러내놓고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트위터에 공개적으로 "한국이 방위비를 인상하는 데 동의했다"고 했고, 다음 달 초 방한하는 스틸웰 차관보도 '공평한 방위비를 분담하라'고 압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불을 붙인 셈인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 측이 '한국 언론이 너무 방위비 보도를 많이 한다'며 대표단을 압박하는게 정당한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왜 이 기자와 점심 먹었나" 추궁

사실 하루 이틀 일은 아닙니다. 이 정부 들어 외교안보부처의 한 고위당국자는 실국장급 회의 시간에 휴대전화를 들어 '부재중 통화 수신' 목록을 보여주며 "이렇게 기자들 전화를 안 받고 있으니 그대들도 받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해당 부처 실무진들은 증언합니다. 이 부처는 실제로 한동안 기자들을 멀리했습니다.

또 다른 모 고위당국자는 특별감찰반실 조사를 받으며 "왜 이 매체 기자와 이렇게 통화를 많이 했느냐, 이 기자는 만나고 이 기자는 왜 안 만났나, 이 기자와 점심을 먹으며 정보를 흘린 게 아니냐"며 추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특정 매체에 외교안보 사안 보도가 나온 후 외교부 실무진에 대한 대대적인 휴대폰 수거 보안 조사가 이뤄지는 일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전 정부 시절에는…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정례 브리핑 제도를 만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장관급이 1~2주에 한 번씩 브리핑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천영우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청와대 기자단과 소파에 앉아 "미사일 좀 아세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한참을 미사일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고 합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협상을 주도했던 모 국장은 기자실에 와서 협상 상황에 대해서 상세히 브리핑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정책은 틀렸다'는 일부 기자와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벌일 때도 있었지만, 정책 이해도는 지금보다 높았고, 오보가 나오게 되면 기자 개인의 탓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배경설명을 해주지 않고, 틀린 보도에 대해서도 확인해주지 않으니, 오보에 대해서 기자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엉뚱한 내용이 나와도 그것이 사실인 양 흘러갈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정부 관계자들은 협상이 시작되기 전 "방위비분담금은 국민들의 수용 한도를 반영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국민 눈높이'를 강조해왔습니다. 협상 상황을 공유하지 않는데, 국민들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하겠다는 것인지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 이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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