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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대통령의 짝사랑

등록 2020.01.07 21:45

수정 2020.01.07 21:49

노벨상을 받은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각인 효과'로 유명합니다.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 새가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알고 따르는 현상을 가리키지요. 로렌츠가 까마귀를 키우는 친구 집에 가서 얘기를 나누는데 까마귀가 그의 입속에 벌레를 넣으려 했습니다. 그가 입을 다물자 이번엔 귓속에 벌레를 넣어주려고 애썼습니다. 자기도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까마귀가 로렌츠에게 한 구애의 몸짓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호감을 표시해도 퇴짜를 맞으면 짝사랑이 됩니다. 그리고 시인은 짝사랑을 넘어 외사랑의 경지까지 갑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부산에 초대한다는 친서를 보내자 북한이 "소뿔 위에 달걀 쌓으려는 철없는 궁리"라고 비아냥댄 게 한 달 보름 전 일입니다. 지난 연말에는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 기고를 "과대망상, 철면피"라고 욕했습니다. 남북 평화경제 구상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 비무장지대의 국제평화지대화는 "세 치 혓바닥 장난"이라고 삿대질한 것도 반년이 안 됐습니다.

그리고 오늘 신년사에서 대통령은 김정은 답방, 한반도 평화 3원칙, 남북 평화경제, 비무장 평화지대를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평화의 필연적 전제조건 비핵화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김 위원장이 새해 구상에서 남북의 남 자도 꺼내지 않은 것과 극단적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 정보당국이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결론 내렸다는 보도가 바로 어제 나왔는데 말입니다.

사랑에는 밀고 당기기, 이른바 밀당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직 북한으로 향하는 그 외사랑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대통령의 멘토이자 복심으로 통하는 문정인 외교안보특보는 "문 대통령은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자 남북 평화 이니셔티브에 베팅한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내다봤습니다. "외교적 돌파구가 없다면 문 대통령은 총선에서 주눅이 든 채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이 불확실한 미래가 대통령 개인의 문제라면 다행이겠습니다만 국가의 미래를 건 베팅에 너무 많은 판돈을 건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불안합니다.

1월 7일 앵커의 시선은 '대통령의 짝사랑'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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