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트로트로 시름을 잊다

등록 2020.03.13 21:45

수정 2020.03.13 21:56

서울 여의도를 바라보는 양화 한강공원에 노란 물결이 일렁입니다. 양화라는 동네 이름처럼 버드나무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반포 한강공원 샛강가에도 실버들이 연노랑 꽃가지를 드리웠습니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 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인순이가 희자매 시절 불렀던 '실버들'은 김소월 시를 가사로 붙였습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봄날 개울가에서 떠난 임 그리는 정미조의 '개여울'도 소월 시입니다. 그리고 마야가 강렬한 록으로 터뜨린 명시 '진달래꽃'까지… 소월은 찬란한 봄조차 사무친 정과 깊은 한으로 읊었습니다. 척박한 땅, 모진 삶을 살며 흘렸던 민족의 피눈물과, 그 눈물을 훔치며 일어서는 생명력을 노래했습니다.

오늘 꼭두새벽까지 TV 앞에 붙잡히듯 앉아 신세대가 부르는 트로트에 빠져들었습니다. 곁에 있는 아내가 볼세라, 눈가에 번진 물기를 숨기면서 저는 김소월의 정과 한, 정한을 떠올렸습니다. 이별 설움 원망 미련 체념 인고 희생… 어린 소년부터 중년 무명가수까지 '미스터트롯'들은 저마다, 지나온 삶의 궤적에 얽히고 설킨 마음결을 풀어냈습니다.

회한과 그리움, 가족사랑과 고마움, 삶의 용기와 의지를 때로 잔잔하게 때로 격하게 토해냈습니다. 그렇게 굴곡진 인생 고백과, 곧게 선 인생 찬가를 듣고 있자니 어느 사이 제 가슴속 응어리도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트로트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절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봄은 왔는데 봄이 아니더라'는 말처럼 온 국민이 마음을 앓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일상이 멈추거나 바뀌면서, 불안 분노 충격 공포 슬픔 혐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시름들을 미스터 트롯들이 다독여줬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큰 위안과 힘을 건네준 마음의 방역이었습니다. 그 얼굴들, 노래들,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잔상으로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3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트로트로 시름을 잊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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