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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앵커가 고른 한마디] 부자에게만 허락된 관제 기부

등록 2020.05.03 19:45

수정 2020.05.03 19:55

'고수레 고수레' 우리 선조들은, 들에서 농삿일을 하다 새참을 먹을 때, 음식을 덜어 '고수레'하고 주변에 던져줬습니다.

빨갛게 잘 익은 홍시를 딸 때도 꼭대기에 있는 감 서너개는 남겨뒀지요. 추운 겨울을 나야하는 새들 몫의 '까치밥'이었습니다.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는 상생의 의미였습니다. 

'기부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는 기부에 대해 "그저 수표 한 장을 주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어루만지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2008년)
"너 자신 혼자만을 위해 살지 말라. 진정 행복해지려면, 여러분은 함께 살아야 하며 (가진 것을) 되돌려 줘야 합니다"

기부는 부자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의미하는 인류애적 속성을 갖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사회에서는 이 아름다운 단어인 '기부'에 '관제'라는 단어가 붙고 있습니다. '관제 기부' 뭔가 어색한 단어들의 조합이죠.

내일부터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고소득자들은 '자발적 기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압박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조정식 /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4월 22일)
"(기부하겠다는) 고소득층이나 사회지도층, 국민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추가적인 재정 소요가 줄어들게 되겠죠"

유승민 / 미래통합당 의원 (지난달 28일)
"우리 부총리께서는 100만 원 받으실거예요?"

홍남기 / 경제부총리
당연히 저는 받지 않을겁니다."

이 아이디어는 문재인 대통령이 냈다고 청와대가 설명했는데, 그래서인지 여권에서는 앞다퉈 기부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상징하는 단어, '기부'가 이념과 계층 간 갈등의 장으로 소환된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도 삶은 팍팍할 수 있는데, 지원금을 받고 죄의식이 싹튼다면 그 후유증도 적진 않을 겁니다.

이번 코로나 19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작은 희망을 봤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70대 할머니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편지와 함께 현금 1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한 20대 장애인은 '부자만 하는게 기부라고 생각했는데, 뉴스를 보고 용기를 냈다'며 마스크 11장과 사탕을 경찰서 앞에 놓고 가기도 했죠.

이들의 기부가 깊은 울림을 준 건, 돈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앵커가 고른 한마디는 '부자들에게만 허락된 관제 기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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