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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몽의 추락,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다시 생각한다

등록 2020.08.26 21:55

수정 2020.08.26 21:59

중국몽의 추락,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다시 생각한다

 

<중국몽의 추락>,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다시 생각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표현이 자주 들린다. 고대 그리스 때 전통의 강호 스파르타가 신흥 강국 아테네의 부상을 두고 보지 않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켜 굴복시켰던 것처럼, 미국와 중국 사이의 충돌도 불가피한 일이 아니냐는 시각이 널리 퍼져 있는 탓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표현을 유행시킨 그레이엄 앨리슨은 미국은 이미 중국과 정면 승부를 벌일 타이밍을 놓쳤으니 중국을 적국으로 생각하는 대신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국내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다. 미국은 이미 중국의 성장을 저지할 능력과 의지를 상실했다는 판단을 깔고 미중 충돌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과연 그럴까.

워싱턴 특파원 출신의 현직 기자 이승우의 책 <중국몽의 추락>은 꼼꼼한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쳐서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중국은 미국을 넘어설 능력이 없고, 미국은 중국의 추월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급부상은 브레턴우즈 체제로 대표되는 미국이 깔아준 판 덕분에 가능했다. 바꿔 말하면, 미국이 판을 걷어치우면 중국은 더이상의 성장 동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 태생적인 약점이다. 그런데 중국은 '중국제조 2025'와 '일대일로'를 표방하며 미국을 넘어서는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저자의 판단으로는, 중국의 자충수였다.

미국이 중국을 키운 목적은 냉전 시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안보에서 중국의 쓰임은 이미 끝났다. 그런데 장기판의 말이 주인 행세를 하려 드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 때마침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을 통해 석유 때문에 중동에 매여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군사력을 인도-태평양으로 돌려 중국을 겨냥하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안보는 늘 최악의 가능성, 무력충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무력충돌 상황을 가정할 때 전략적 우위를 점하자 미국은 무역전쟁에 나섰다. 중국의 상품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긴 했지만 '없으면 불편한' 제품들인 반면 미국의 상품은 '없으면 살 수 없는' 제품들이다. 예컨대, 중국산 싸구려 옷가지와 전자제품은 베트남에서 사면 그만이다. 그때까지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산 콩을 수입하지 않으면, 중국에서 폭동 일보 직전의 상황이 벌어진다. 콩은 중국인들이 주식처럼 먹는 두부의 주재료인데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돼지의 사료인 탓이다. 1차 무역전쟁은 겉보기에 어정쩡한 봉합으로 끝났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의 힘을 확인한 중국의 완패였다고 풀이한다. 흠씬 때려주고는 "더이상 때리지 않을게"라는 약속이 합의의 골자였다는 설명이다.

중국 내부 문제로 들어가면, 너무 익숙한 모습이어서 우리가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는 풍경들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배우 판빙빙 실종사건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중국은 21세기의 정상적인 국가로 보기 어려운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꿈꾸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지구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빈부 격차가 심한 내부 모순을 키우가고 있다. 사드 보복에서 보듯, 주변국을 속국 취급하는 못된 습관도 과거 봉건시대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의 공세와 맞물리면 이 모순들이 폭발하는 시기가 생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고 저자는 전망한다.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우리끼리만 통하는 속 편한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순간이 왔으며,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방 국가 정상으로 유일하게 천안문 망루에 올라 시진핑의 체면을 세워줬지만 사드 보복을 피할 수는 없었다.

현 정부 들어서는 '한반도 균형자'를 자임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균형자인듯 보이지만, 사실 그 내용은 미국과 중국의 균형자를 뜻한다. 실상은 일본과 대립하면서 한미일 3각 동맹으로 중국을 견제한다는 미국의 전략에 정면으로 반하는 전략이다. '균형자'라는 표현과 달리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에 기울었다는 의구심을 가질만한 태도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이미 시작됐고, 중국의 패배는 불가피하다고 보는 저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은 지금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고 있다.

'공산 중국의 붕괴'를 예언하는 책을 후반부로 가면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과격한 결론이지만, 저자는 최대한 근거를 꼼꼼히 제시한다. 정작 근거가 없기로 말하면, 해방공간에서나 적용됐을 법한, 그리고 지금도 먹물 행세하는 사람들의 '주류'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체화하고 있는 '미국은 악당, 중국은 친구' 운동권 감성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 대신 '보고 싶은 허상'에 근거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다. 다소 과격한 예언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승우의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국제정치 게임에서 중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리와 함께 그 선택의 순간에 고려해야 할 '사실'을 꼼꼼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밑도 끝도 없는 거부감과 호감 대신 '사실'을 근거로 한 사고와 토론이 있을 때, 선택의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강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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