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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대법 "'성적 빡치심'도 피해감정"…'레깅스녀' 앵글 담으면 범죄될 수도

등록 2021.01.06 14:52

수정 2021.01.06 16:25

[취재후 Talk] 대법 ''성적 빡치심'도 피해감정'…'레깅스녀' 앵글 담으면 범죄될 수도

 

그 날 상황은 이랬다. 하차 벨소리가 울리자, 한 여성이 버스 뒤 출입문에 섰다. 헐렁한 윗도리에 검정 레깅스. 이미 일상복이 된 운동복 차림이었다. 문제는 여성 뒷쪽에 앉은 남성이었다. 남성은 레깅스로 드러난 여성의 몸매를 휴대폰 카메라로 8초간 동영상을 찍었다. "예뻐보였다"는 이유였다. 촬영을 눈치챈 여성은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고 했다. 불쾌함에 경찰서까지 끌고 갔지만, 이후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는 했다.

자,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제 판단해보자. 이게 성폭력 처벌 특례법상 처벌대상일까, 아닐까.

■ '성적 욕망·수치심 유발 신체?'…대법 "피해감정 다양"

6일 공개된 대법원(주심 대법관 김선수) 판단은 '그렇다'였다.

버스 안에서 이뤄진 레깅스 뒷태 촬영에 대한 판단은 계속 뒤바뀌었다. 1심 재판부 판단은 유죄였지만, 2심에선 무죄로 뒤집혔다.

2심 재판부의 논리는 간단했다. 레깅스 뒷태가 성폭력 처벌 특례법 제14조 제1항에 규정된 "성적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피해여성이 레깅스 차림으로 스스럼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듯 비슷한 연령대 여성들이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입고 있다는 점도 감안됐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이 보호하고자 한 성적 수치심이란 게 반드시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만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여성이 카메라 각도가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된 직후 "기분 더러웠다"는 분노도 수치심으로 대표되는 피해감정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성적 수치심이란 분노ㆍ공포ㆍ무기력ㆍ모욕감을 비롯한 다양한 층위의 피해감정을 포섭하는 의미"라며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돌려보냈다.

■ "공개된 장소, 드러난 옷맵시도 불쾌감 들면 보호대상"

대법은 카메라로 찍는 부위가 살갗이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고 봤다. 달라붙은 옷을 골라입은 게, 또 그걸 입고 외출을 하는 게 성적 의도를 갖고 촬영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돼선 안된다는 설명이었다.

대법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의 대상이 반드시 노출된 신체는 아니다"며 "몸에 밀착해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에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피해자가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사정은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의 모습이 타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 정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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