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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앵커가 고른 한마디] 권력에게만 찾아오는 행운

등록 2021.03.21 19:46

수정 2021.03.21 20:00

2000년 1월, 아프리카 짐바브웨 국영은행에서 복권을 추첨하던 사회자는 당첨자를 확인하고 눈을 의심합니다. 1등 당첨자가 바로, 현직 대통령이었던 겁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실직자였지만, 자신과 측근들의 월급은 두 배로 올리고 호화파티를 즐기던 독재자 무가베. 무가베는 복권 당첨이 '운'이었다고 설명했지만, 글쎄요. 그 나라 국민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진 모르겠습니다.

LH발 투기 의혹이 점입가경입니다. 부동산 부패사슬을 헤집어 보니 시·도 의원,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청와대 직원까지 윗물은 맑은데 바닥만 문제라던 누군가의 말과 달리, 이 정부의 권력이 있는 곳엔 비리가 자라고 있었던 건 아닌지..

여당에선 본인이나 가족이 투기를 의심받는 의원이 일곱이나 나왔는데도 그들의 해명은 되레 우리 속을 뒤집어놓습니다. 주변 권유로 산 땅이 맹지였는데 갑작스럽게 개발돼 금싸라기 땅이 됐다니, 1등에 당첨된 게 운이라는 짐바브웨 대통령의 말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과거정부를 탓하듯 또 다시 '적폐'란 단어를 꺼냈습니다.

문재인
"이번 계기에 우리 사회 불공정의 가장 중요한 뿌리인 '부동산 적폐'를 청산한다면…"

드러난 문제가 모두 현 정부에서 벌어진 일인데, 무엇보다 집권 5년차를 앞둔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닌 듯 합니다.

25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서울 아파트 값은 1채당 5억 원이 올랐다고 합니다.

집 팔라는 정부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상실감과 분노를 떨치지 못하고 있지만, 집을 지키기 위해 자리까지 내놨던 고위 관료들은 되레 혜택을 봤습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전현직 장관의 부동산은 2년만에 8억 이상 급등했고, 청와대 1급 이상 공직자들의 아파트값은 평균 3억 이상 올랐다고 합니다. 부동산 정책의 설계자인 장하성 김수현 전 정책실장의 집은 무려 10억 원 넘게 뛰었습니다. 우리가 월급을 한푼두푼 저축하는 사이 권력자들에는 그렇게 로또 같은 행운이 찾아 온 걸까요.

집값을 올려놓고는 이번엔 세금을 더 걷어갑니다. 오른 집값에 공시지가 현실화까지 더해지면서, 1주택자 중에서도 종합부동산세를 내야하는 이들도 급증했습니다. 집값이 올랐으니 세금을 더 내라는 정부의 말이 틀린 건 없지만, 주머니까지 털리는 속 쓰린 국민에게 할 말은 아닌 듯 싶습니다. 6억 이하 주택은 재산세를 깎아준다고 하지만, 10년 뒤엔 2배 이상으로 오른다니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를 지경입니다.

산더미같은 부동산 규제로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여기에 세금까지 더 걷어가는 사이 국민 대다수는 부동산 전쟁의 패배자로 남게 됐습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며 국민들은 이미 한차례 뿌리 깊은 패배감에 젖은 바 있습니다. 권력자들이 정보와 특혜를 움켜쥐고 '명문대 졸업장'과 '좋은 일자리'까지 차지하면서 '21세기 세습사회'라는 열패감이 젊은층의 사기를 꺾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땅 투기 의혹이 단순한 행운이었는지 여부는 반드시 가려져야 합니다.

채근담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도덕에서 비롯된 부와 명예는 숲속의 꽃과 같아서 스스로 무럭무럭 잘 자라지만, 권력에서 나온 것이라면 꽃병 속의 꽃과 같이 뿌리가 없으니 시듦을 기다린다"

오늘 앵커가 고른 한마디는 '권력에게만 찾아오는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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