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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그냥 웃지요

등록 2021.03.25 21:49

수정 2021.03.25 21:54

어느 봄날, 시인이 아내 심부름을 갑니다.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 원을 갚으러 동네 철물점으로 나섭니다.

그런데 후두둑 비가 내립니다.

시인은 구멍가게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다 맥주를 사 마십니다. 멀리서 쑥국쑥국 쑥국새는 울고, 벌컥벌컥 그는 마십니다.

시인은 아내한테서 다시 4만 원을 받아들고 나섭니다.

그런데 꽃집 앞을 지나다 그만 자스민 향기에 빠져 한 그루를 사고 맙니다.

아내는, 두 번이나 배달사고를 친 시인을 노려보지만, 어쩌겠습니까, 봄인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게 죄지요. 그래도 시인은 밉살스럽지가 않습니다. 꿈꾸듯 사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하지만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는 곳도 있습니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는 어느 단편집 제목처럼,

고양이더러 아예 반찬가게를 지키라고 맡기는 곳, 국회입니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느라 사퇴한 김진애 의원의 금배지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물려받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대변인에서 물러났던 그가 부동산정책을 다루는 국토위에 배정된다고 합니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넘어 왠지 모욕당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저뿐일까요.

그가 올렸던 글이 떠오릅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부동산 안정이 필수적이고, 그러려면 국민이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믿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의 국토위 활동이 정책 신뢰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LH 국정감사를 하고 투기꾼들을 꾸짖어야 할 텐데 그 모습은 또 어떻게 비칠까요.

그는 김진애 의원이 "대범하고 통이 크다"며 "무량무변" 이라고 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다'는, 부처에게 바치는 찬사를 쓴 겁니다. 이래저래 민망하지만 그야말로 기쁨이 그만큼 컸던 걸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법사위는 또 어떻습니까.

최강욱 의원은 재판받는 피고인이면서 법사위를 지망해 활동해오다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중수청 설치와 검찰 수사권 박탈에 앞장선 분들이, 최 의원을 비롯한 피의자, 피고인 신분의 여권 의원들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을 부르는 옛말 '선량'은 '가려 뽑은 어진 인물'을 뜻합니다. '현명하고 어질고 품행 바르고 효심 깊고 청렴한 사람'을 가리키지요.

지금 우리 국회는 그런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까? 아니면 사리사욕을 내세워 국가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최소한의 염치를 기대했던 제가 도리어 우스워져서 그냥 웃고 맙니다.

3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그냥 웃지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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