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세상은 아직 뜨겁습니다

등록 2021.12.22 21:50

수정 2021.12.22 21:55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름난 오 헨리가 또 하나 선물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추운 겨울 실직한 사내가 식당 앞에서 1달러를 적선 받습니다. 50센트로 허기부터 때우는데 노인이 부러운 듯 바라봅니다.

그는 남은 50센트로 빵을 사 노인에게 건네지요. 노인은 빵을 조금 떼어먹더니 신문팔이 소년에게 줍니다. 소년은 길 잃은 개에게 빵 부스러기를 나눠주고, 사내는 개 목걸이에 찍힌 주소를 보고 주인을 찾아줍니다. 그리고 개 주인은 그에게 일자리를 내줘 보답하지요. 1달러의 선의가 엮어낸 행복의 사슬이 그렇게나 길게 빛났습니다.

암으로 죽음을 앞둔 시인이 병상에서, 겨울 처마에 매달린 시래기를 생각했습니다. "찬바람에 배배 말라가면서 그저, 한겨울 따뜻한 죽 한 그릇 될 수 있다면" 변변찮은 시래기도 외롭고 허기진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누고 베푸는 마음은, 가진 것 많고 적음에 상관이 없습니다. 

올해를 누구보다 힘겹게 지났을 분들이 자영업자일 겁니다. 그런데 지난 2년 코로나의 컴컴한 터널 속에서도, 1억 원 이상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에 새로 가입한 자영업자가 오히려 더 늘어났답니다. 자영업자, 직장인, 공무원, 교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증가한 것도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하고요.

부산에서 어묵집을 하는 이승배씨도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작년 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습니다. "그래도 견딜만해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는 동병상련의 기부였지요.

올해 'LG의인상' 수상자도 평범한 소시민들이었습니다. 50여 년 김밥을 팔아 모은 전재산을 내놓은 박춘자 씨, 빵집을 하면서 날마다 등굣길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온 '남해 빵식이 아재' 김쌍식 씨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맘때가 되면 기다려지는 전주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가 있습니다. 재작년 성금 도난사건을 겪고도 지난해 21년째 성금을 놓고 갔지요. "코로나로 힘든 한 해였지만 이겨내실 거라고 믿는다"는 쪽지와 함께…

기독교적 영혼의 충만을 노래했던 김현승 시인이 기도했습니다.

"사랑의 동전 한 푼, 내 맑은 눈물로 씻어, 내 마음의 빈 그릇에 담아 드리리니… 이 세상 모든 황금보다도 더욱 풍성하게 쓰이리니"

고난의 한 해가 또 저물어가면서, 가난하기에 더 맑은 동전들이 밤하늘 별처럼 세상을 비추는 간입니다.

12월 22일 앵커의 시선은 '세상은 아직 뜨겁습니다'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