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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담차담] 꽁지 빠진 닭인 줄 알았는데…

등록 2023.08.31 09:00

수정 2024.01.11 18:12

조랑말 신화의 뿌리 ⑥

안팎에서 회의론이 나왔다. "코티나 조립 생산도 버거운데 독자 모델이라니" "막대한 돈이 들 텐데, 실패하면 바로 문 닫는다" "한국의 인프라와 산업 수준으로 볼 때 무모하다" "시장 규모가 협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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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현대자동차가 포드와 제휴해 생산하던 차종들. 왼쪽부터 '유럽포드 R 버스' '코티나' '20M' 'D 트럭'. 독자 모델을 본격 추진한 1973년 전체 판매대수가 4000여 대에 지나지 않아 안팎에서 회의론이 일었다


사운을 걸어야 했다. 5만 대 이상은 팔아야 남는 게 있었다. 그러지 못하면 파산이었다. 1973년 국내 판매대수는 승용차·버스·트럭 다 합쳐 1만8000여 대. 이 중 현대는 4000대 가량을 팔았다. 반대는 당연했다. '무모한 도전'이 되기 십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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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는 1965년 국내 시장 진출을 타진했다. 신진자동차와 기술제휴를 하려다 무산됐다. 1973년 현대자동차를 파트너로 삼고, 이후 '기술 스승' 역할을 했다. 1970~1990년대 현대의 엔진과 변속기, 플랫폼 등은 대부분 미쓰비시제(製)였다. 현대와의 마지막 합작 모델은 '1세대 에쿠스'다. 미쓰비시는 이 모델을 일본 시장에 '프라우디아'로 출시했다. 2008년 1세대 에쿠스 단종으로 두 회사의 협력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났다. 사진은 1973년형 미쓰비시 랜서. 후륜구동 플랫폼과 엔진 등을 포니와 공유한 대표적인 소형 모델이었다


'독자 모델'을 생산하려면 어쨌든 다른 제휴선이 필요했다. 물 건너간 포드를 대신한 건 미쓰비시였다. 차체는 이탈리아의 설계전문회사 '이탈디자인'에 맡겼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팀을 이끌었다. '장차 수출을 할 수 있는 디자인'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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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디자인의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당시 국내에는 생소한 '패스트백'과 '해치백'을 버무린 형태의 디자인을 추천했다. 아래 사진은 주지아로가 직전에 디자인한 폭스바겐 골프


1973년 9월 주지아로가 서울로 왔다. 손에는 세 종류의 렌더링 이미지가 들려 있었다. 패스트백과 해치백을 버무린 스타일의 1안을 강력히 추천했다. 한국에는 생소한 디자인이었다. 최고 전문가의 추천이니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주영은 "꽁지 빠진 닭 모양"이라고 싫어했다고 한다. 주지아로는 직전에 '폭스바겐 골프'를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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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등장한 '포니'와 '포니 쿠페'. '현대' 영문 이니셜 오른쪽에 조랑말 엠블럼을 부착했다(사진 아래)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꽁지 빠진 닭' 실물이 등장했다. 대한민국의 첫 독자 모델 '포니(Pony)'다. 차명은 소형승용차를 부상으로 내건 공모전을 통해 선정했다. 6만 건 가까이 응모했는데, '아리랑' '도라지' '무궁화' 등이 많았다. 포니는 100건 정도였다. 부지런히 앞만 보고 달려가자는 의미에서 최종 선택했다. 뒤쪽 'HYUNDAI' 로고 옆에 조랑말 엠블럼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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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의 첫 차체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생산했다. '독자 모델'이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의 실질적인 시작이었다


프로토타입을 내놓는 것과 양산은 다른 문제였다. 총 지휘자를 물색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경영진이었던 조지 턴불을 부사장으로 모셔와 일임했다. 1975년 11월 준공한 울산공장에서 이듬해부터 본격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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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계약을 알리는 신문광고


1976년 1월 25일자 신문들은 '포니 계약 시작' 광고를 실었다. 배기량 1238cc, 80마력짜리 포니 한 대 가격은 228만9200원. 당시 서울 반포아파트 22평형이 680만~730만 원이었다. 그런데도 '인기 폭발'이었다. 그해 1만726대가 팔렸다. 판매 점유율이 43.5%였다. 이후 나온 픽업과 왜건형도 히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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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독자 개발'은 1994년 엑센트다. 전륜구동 플랫폼에 자체 생산한 알파엔진, 변속기 등을 장착했다. 알파엔진은 영국의 설계전문업체 '리카르도'가 주도했고 현대의 엔지니어들이 참여했다. 개발한 엔진의 시험 과정과 세부 설정은 마북연구소에서 했다


독자 모델과 독자 개발은 다르다. 포니는 후륜구동 플랫폼과 엔진 등을 미쓰비시에서 들여왔다. 1994년 전륜구동 플랫폼까지 자체적으로 만든 엑센트가 '독자 개발' 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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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형 스쿠프는 미쓰비시의 '뉴-오리온'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를 대체해 1991년 알파엔진을 탑재했다. 4기통으로 기통 당 밸브 3개(흡기2, 배기1)의 SOHC 사양이었다. 그해 가을 터보차저를 선보였다


엔진 국산화의 출발은 1983년이다. GM에 근무하던 이현순 박사를 영입했다. 정주영은 이 박사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 때 만들어진 게 마북연구소다. 알파(α)프로젝트는 변속기 개발을 포함했다. '1991년형 스쿠프'에 '알파엔진과 변속기'를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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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와 데보네어. 똑같다. 차이점이라면 이후의 운명이다. 그랜저는 세대를 바꿔가며 '한국을 대표하는 승용차'가 됐다. 데보네어는 경쟁 차종이었던 토요타 크라운 등에 계속 밀렸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의전용 고급차가 필요했다. 라이선스 생산을 했던 유럽포드의 그라나다는 끝물이었다. 미쓰비시에서 개발하고 현대가 비용을 댔다. '2세대 데보네어'를 기반으로 '그랜저'를 출시했다. '각 그랜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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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쿠스'로도 불렸던 1세대 에쿠스와 미쓰비시 프라우디아. 에쿠스는 제네시스 G90으로 이어진다. 프라우디아는 일본 시장에서 '판매 저조'와 미국 시장에서 '리콜 은폐' 문제로 2001년 단종됐다. 이후 11년 만인 2012년, 닛산 Q70에 미쓰비시 엠블럼을 붙여 '준대형차'로 급을 낮춰 부활했다. 하지만 그래도 '안 팔려' 2016년 11월 생산을 중단했다. 현대정공의 갤로퍼와 파제로도 같은 모델이다


1세대 에쿠스도 공동개발했다. 미쓰비시는 '프라우디아'로 팔았다. 기술제휴는 2008년 단종하면서 완전 청산했다. 에쿠스도 각이 있어서 '각그랜저'처럼 '각쿠스'로 불렸다. 현대정공의 갤로퍼는 미쓰비시의 파제로,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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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는 처음부터 수출을 목표로 했다. 국내 첫 고객 인도(1976년 2월 29일)보다 이른 1976년 2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15대를 보냈다. 1977년에는 7427대를 30개 나라에, 1978년에는 1만8317대를 40개 나라에 수출했다. 1982년 7월 포니는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생산 30만 대를 돌파하고 10만 대를 수출했다. 당시 발생한 기념엽서(사진 아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첫 수출은 1976년 에콰도르였다. 6대를 선적했다. 에콰도르 수출분 중 1대는 20년이 지나 국내로 다시 돌아왔다. 현지에서 택시로 150만km를 주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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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선보인 대한민국 최초의 쿠페 '포니 쿠페'. 수요가 많지 않을 거라는 조사도 있었지만, 1979년의 이란발(發) 2차 오일쇼크가 양산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국산 최초의 쿠페는, 현대 스쿠프가 아니다. 1974년 토리노에서 선보인 포니 쿠페였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지금 봐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실내는 앞·뒤 각각 2인승 시트로 구성했다. 주지아로 디자인 중에서도 성공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49년이 지나, 손자가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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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쿠페를 지난 5월 '양산'을 목적으로 복원했다. 원작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주지아로 아키텍투라'의 디렉터인 아들 파브리치오 주지아로가 작업에 참여했다


포니 쿠페 콘셉트는 구미(歐美)를 노린 수출 전략차종이었다. 양산형 디자인까지 내놨지만, 계획을 백지화했다. 예상 판매량이 많지 않게 나왔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 않았다. 1979년의 석유파동은 전세계를 얼어붙게 했다. 연료절감형 소형차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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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로리언은 첫 번쨰 시험모델을 1976년 10월에 발표했다. 공식 출시 모델은 'DMC-12'다. 1981년 북아일랜드 던머리(Dunmurry) 공장에서 제작했다. 이듬해 말 파산할 때까지 보닛의 형태나 휠 디자인 등을 바꿔가며 8975대를 생산했다. 지금도 6500여 대의 들로리언이 운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백투더퓨처'는 1985년 전 세계 영화 흥행 1위였다


이 디자인 어디선가 봤다. 1985년 흥행 1위 영화 '백투더퓨처'의 타임머신 '들로리언'이다. GM의 엔지니어 존 들로리언은 1975년 DMC((DeLorean Motor Company)를 설립했다. 그리고 첫 차의 디자인을 주지아로에게 요청했다. 토리노 모터쇼에서 본 포니 쿠페 디자인에 꽂혔기 때문이다. DMC는 '포니 쿠페'가 원조인 'DMC-12`를 1981년부터 2년간 생산했다. 하지만 영화의 '대박'은 들로리언에 뒷북이었다. DMC는 개봉 3년 전 파산했다.


 


사진 : 나무위키, 위키백과, 위키미디어커먼즈, 위키피디아, 현대기아차, 국가기록원,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유니버설 픽쳐스 코리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클래식카닷컴(https://classicca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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