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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담차담] 뭐가 비슷해! 짝퉁 아니라고…

등록 2024.01.18 09:00

수정 2024.01.18 14:28

첨단 방호 다 모여라!⑨

2018년 5월 7일, 크렘린 궁에 육중한 차량이 들어섰다. 얼핏 롤스로이스 팬텀 같았다. 루프 라인, 미등, 보닛…. 휠의 로고가 주행 중에도 움직이지 않는 플로팅 휠도 장착했다. 자세히 보니 조금 달랐다. 소송을 피할 수 있을 만큼 판테온 그릴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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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차 아우루스 세나트에 탑승하기 위해 크렘린 궁의 집무실을 나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어 '크렘린'은 '요새' '성채'라는 뜻이다. 현재의 크렘린 궁 외벽 대부분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가 만들었다. 1480년 몽골 군대를 패퇴시키면서 1237년 키예프 공국 이후 이어져온 '몽골 예속'을 끊어낸 군주다. 모스크바를 침공한 나폴레옹은 퇴각하며 크렘린 폭파를 명령했다. 1812년 10월 21일부터 사흘 동안 폭발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반차르' 볼셰비키도 크렘린을 점령한 뒤 적잖은 건물을 폭파했다. 그래도 성벽과 주요 궁전은 남았다. 1960년 소련 최초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네 번째 대통령 취임식은 새 의전차의 데뷔 무대였다. 아우루스 세나트(Aurus Senat). 최고의 방탄작업을 했다. 전장 6900mm에 공차중량은 7200kg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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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통령경호국은 아우루스 세나트의 공식 제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포르쉐의 도움을 받은 850마력 안팎의 V12 터보차저 엔진이 9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린 것으로 알려졌을 뿐, 정확하지 않다. 사진은 2018년 5월 7일 푸틴의 네 번째 대통령 취임식 당시 기마대의 사열을 받는 모습


2013년 푸틴은 정부엔진연구소 'NAMI'에 의전차 개발을 지시했다. 러시아도 오래 전부터 자동차를 제작한 국가다. 푸틴은 의전차에서도 '러시아의 부활'을 보여주고 싶었다. 2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NAMI가 설계해 아우루스가 제작했다. 2017년 말, 아우루스는 대통령경호국에 결과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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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네바모터쇼에 전시된 아우루스 세나트. 방탄 주문은 옵션이다


아우루스는 '2018 모스크바모터쇼'에 민수용을 출품했다. 포르쉐와 공동개발한 4.4리터 8기통 트윈터보 엔진을 얹었다. 전장 5631mm, 공차중량 2700kg다. 언제든 원하는 수준의 방탄을 해준다. 아우루스는 '금'의 어원 'Aurum'과 'Russia'를 합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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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모스크바 공장에서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AMO F-15'


러시아 자동차산업의 시작은 1916년이다. 모스크바자동차협회(AMO)가 피아트의 F-15를 라이센스 생산할 공장을 지었다. 1917년 9월, 공장을 완공했지만 'AMO F-15'를 만들 수 없었다. 10월 혁명이 일어난 탓이다. 국유화한 뒤 F-15를 본격 생산한 건 1924년 11월 1일이었다. 1931년 공장을 확장하면서 회사명에 최고 지도자 스탈린의 이름을 넣었다. ZiS(Zavod Imeni Stalina)는 개량형 AMO-3를 생산했다. 이후 GAZ-AA와 함께 소련 트럭의 양대산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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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의전차 개발을 지시했던 NAMI는 1920년 만들어졌다. AMO F-15를 참조해 1927년 NAMI-1을 자체 개발했다. 2인승 소형차였지만 1931년 라이선스 생산한 포드-A는 물론, 트럭인 포드-AA보다도 비쌌다.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 개발한 자동차여서 망할 일은 없었다


소련 최초의 자동차는 1927년 NAMI가 자체 개발한 NAMI-1이다. 기계적으로는 사이클카 정도로 단순했지만, 실패했다. 자체 개발하느라 부품 산업이 받쳐주지 못했다. 1931년까지 세 자리수만 생산하고 단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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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트럭 'NAZ-AA'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공장 노동자들(사진위). 니즈니 노브고로드(Nizhny Novgorod)가 고리키(Gorky)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에 따라 모델명도 바꾸었다. 'GAZ' 공장의 모습(사진 아래)


소련은 1929년 3월 라이선스 생산을 다시 추진했다. 이를 통해 세단의 기술이전을 받으려고 했다. 선택은 포드였다. 1930년 5월 니즈니(Nizhny Novgorod) 공장에서 세단 '포드-A'와 트럭 '포드-AA'를 조립했다. 1932년 1월 1일부터는 포드 이름을 버렸다. 니즈니 머릿글자를 따 NAZ-A와 NAZ-AA를 생산했다. 1932년 10월 니즈니가 고리키(Gorky)로 이름을 바꿔 GAZ가 됐다. GAZ-AA는 1956년까지 소련 내 4개 공장에서 100만2천여 대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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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ZiS-101를 바라보고 있는 스탈린(사진 오른편 5명 중 가운데)


1936년 ZiS는 세단 '101'을 출시했다. 1939년 방탄모델 '101E' 프로토타입도 제작했다. 생산을 하지는 않았다. 전쟁이 났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의전차로 1937년형 미국산 패커드(Packard)를 계속 썼다. 전쟁이 끝나고 ZiS가 세단 '110'을 개발했다. 스탈린은 32대를 제작한 장갑 버전 '115'를 의전차로 삼았다. 방탄유리의 두께는 80mm에 달했다. 공차중량은 4톤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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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미국산 고급 승용차 패커드(Packard)를 의전차로 썼다. 사진은 패커드에서 내리는 모습. 전쟁이 끝난 뒤 ZiS가 '110'을 개발하자 '110'의 장갑 버전 '115'를 탔다. ZiS는 스탈린을 위해 '115'를 32대 제작했다


스탈린은 '암살'에 편집증을 보였다. 뒷좌석 가운데 자리, 항상 좌우로 두 명의 무장한 경호원을 앉혔다. 이틀 연속 같은 '115'에 탄 적도 없었다. 쿤체보 다차(Dacha)의 집에서 크렘린 궁으로 가는 출근길 주행경로도 수시로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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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이용했던 의전차, ZIL-41047 모델이다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는 '스탈린 지우기'를 했다. '개인 숭배'는 없어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ZiS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대 공장장 이반 리하초프의 이름을 넣어 ZiL(Zavod imeni Likhachyova)로 바꿨다. 이름은 변했지만, 보리스 옐친 초반까지 ZiL은 소련·러시아의 의전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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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노동절에서 퍼레이드 중인 레닌


10월 혁명의 주역 블라디미르 레닌은 권력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볼셰비키 내 반대파의 암살 타깃이 됐다. 목숨은 건졌지만, 총상의 후유증은 아주 심했다. 장기요양을 위해 '고르키' 별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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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모빌과 트랙터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하프트랙(Half-track)을 처음 설계한 건 프랑스 엔지니어 아돌프 케그레스였다. 1911년 니콜라이 2세의 겨울용 의전차 요청을 받고 앞타이어에는 스키, 뒷타이어에는 무한궤도를 달았다. 눈이 많은 러시아의 기후를 감안한 것이었다(사진 위). 혁명 후 프랑스로 돌아간 케그레스는 레닌의 요청으로 1922년형 롤스로이스를 또 개조했다(사진 아래). 레닌이 구입한 롤스로이스 가격은 1850파운드였다. 소련 정부가 롤스로이스에서 전투기 엔진을 구매해주는 대가로 15% 할인을 받았다고 한다


레닌의 의전차는 롤스로이스 실버고스트였다. '볼셰비키' 레닌은 값비싼 자동차와 집을 좋아했다. 크렘린에는 니콜라이 2세의 의전차 롤스로이스가 5대 남아 있었다. 겨울에 대비한 '스키가 달린 하프트랙(Half-track)'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산 뷰익과 최소 3대의 롤스로이스를 추가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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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마지막 사진 중의 하나. 1923년 5월 15일 고리키에서 정원사가 촬영했다고 한다. 왼쪽은 여동생 마리아 울리야노바, 오른쪽은 신경외과전문의 코체브니코프. 레닌의 시신은 엠버밍돼 붉은 광장 영묘에 전시 중이다. 엠버밍은 훼손된 시신을 복원 처리하는 기술을 말한다. 동사형인 'Embalm'은 '방부 처리를 하다'는 뜻이다. 시체에 있는 피를 빼내고 혈관에 포르말린을 채워넣는다


레닌은 총상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1924년 1월 사망했다. 스탈린은 레닌의 시신을 보존처리(Embalming)했다. 붉은 광장 레닌 영묘에 전시했다. 스탈린 시신도 처음엔 보존처리했지만, 흐루쇼프의 '격하 운동' 후 화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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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사는 벨기에의 유명한 코치빌더(Coach Builder)다


아직 두 대의 ZiL이 크렘린 차고에 있다. 옐친은 메르세데스-벤츠의 풀만 가드를 의전차로 썼다. ZiL의 방탄능력은 괜찮았지만, 차량 자체의 성능이 너무 뒤떨어졌다. 메드베데프는 코치빌더 'C'사에 방탄을 포함한 실내·외 모든 작업을 맡겼다.


사진 :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위키미디어커먼즈, 위키백과, 크리에이티브커먼즈, www.tassphoto.com, 모스크바국립역사박물관(www.shm.ru), 로이터, www.iptc.org, sinsheim.technik-museum.de, www.museum.gaz.ru, www.autogallery.org.ru, www.flickr.com, www.caratduchatelet.com/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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