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앵커칼럼 오늘] 조용한 국민의힘

등록 2024.04.17 21:50

수정 2024.04.17 21:54

"나 지금 숨죽이고 있어요. 이대로 그냥 있어줘요…"

유럽 오페라 가수가, 망설이던 미국 데뷔 무대를 멋지게 치러냅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가수들은 떨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음악과 마주하다'(Face the Music) 입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당당히 대처한다'는 의미이지요.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더는 걸을 수 없네. 돈이 없으니까, 다 떨어졌으니까…"

라 쿠카라차는 바퀴벌레를 가리킵니다. 경쾌한 노래에 멕시코 혁명 때 농민군의 피와 눈물이 스며 있지요. 짓밟혀도 끈질기게 일어서는 민중의 생명력을 바퀴벌레에 비유했습니다.

바퀴벌레가 우습게 볼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봄바람처럼 태평한 사시춘풍 두루춘풍들 입니다. 머뭇거리며 안이하고 구차하게 땜질하는, 망하는 팔자이지요.

처참하게 패배해 땅바닥에 으깨지는 일패도지를 당하고도, 일주일이 되도록 조용한 국민의힘이 그렇습니다.

"(당정관계 소통, 쇄신 이런 목소리 나왔나요?) 뭐 당선자들 그냥 소회 정도."

어제 당선자 총회는 한 시간을 초선 당선자들의 자기 소개로 때웠습니다. 화기애애하게 셀카도 찍었습니다. 천막 당사의 각오는커녕, 큰절하는 사죄 시늉조차 없는 진공 상태입니다.

이런 말까지 하는 친윤계 의원도 있지요.

"4년 전보다 다섯 석이 늘었고 득표율 차가 5.4%P로 줄었다. 3퍼센트만 가져오면 대선 이긴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연일 목청을 높이는 이가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어린애'라고 부르며 거친 언사를 퍼붓는 홍준표 대구시장 입니다.

"깜도 안 되는 자다. 정치 아이돌이 셀카만 찍다 말아먹었다. 다시는 우리 당에 얼씬거리지 마라. 특검 받을 준비나 하라…."

대표와 대선 후보를 지낸 당 원로의 그릇이 이렇습니다. 제 얼굴에 침 뱉기가 따로 없습니다.

정조 임금이 인용한 한비자의 한 대목입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느린 사람은 팽팽한 활시위를 차 수양하라.' '유능함과 졸렬함은 거울 앞뒷면과 같다'는 가르침입니다.

집권 여당의 위기 불감증과 무기력은 선거 참패보다 더 깊고 암담한 병입니다.

4월 17일 앵커칼럼 오늘 '조용한 국민의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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