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앵커칼럼 오늘] 내리사랑 치사랑

등록 2024.04.26 21:52

수정 2024.04.26 22:18

법정 스님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는 불일암을 딱 한 번 찾으셨습니다. 스님은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모자가 산을 내려올 때 개울물이 비에 불어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짝 마른 솔잎 단처럼 가벼웠습니다. 스님은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음악학자 이강숙 선생은, 어머니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마지막 뵙고는 임종도 못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쥐여드리고 돌아설 때 마지막 했던 말씀이,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야야, 니 그리 바쁘나? 하룻밤 자고 가면 안 되나?"

부모 자식 사이 애틋한 마음을, 어찌 말과 글로 다 이르겠습니까. 그러나 욕망의 물신이 지배하는 속된 세상에서는, 그 무조건 무한정한 사랑에 돈이 끼어들곤 합니다.

부모와 자식을 버린 패륜 가족의 상속을 제한해야 한다는 헌재 결정이 나왔습니다.

광대의 대사 한 토막부터 떠올립니다.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이 모르는 체한다. 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은 상냥하다.'

홀아비 고리오 영감은 '딸 바보'입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털어 두 딸에게 지참금으로 줍니다. 귀족과 은행가에게 시집 보낸 뒤, 뒷골목 하숙집에서 연금으로 삽니다.

딸들은 사치와 낭비에 빠져 다시 아버지에게 손을 벌립니다. 아버지는 연금까지 내주고 무일푼으로 숨을 거두며 중얼거립니다.

'재산을 거머쥐고 있었다면 딸들이 지금 내 뺨을 키스로 핥고 있을텐데…'

헌재 결정은 국민의 상식과 감정에 들어맞습니다. 하지만 돈과, 자식 사랑과, 효도가 이루는 삼각함수는 난해합니다. 패륜과 불효의 수량을 저울에 달 수 있을까요. 상속 다툼이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가족 사랑이란 법 이상의 것입니다. 효도 각서를 쓰라 하고서 받는 효도가, 따뜻하면 얼마나 따뜻할까요.

'밤 깊고 안개 짙은 날엔 등대가 되마. 넘어져 피 나면 안 되지. 네가 올 때까지 밤새 등대가 되마.'

법으로 사랑을 다스려야 하는 세태를 들여다보며, 피붙이들이 서로를 따스하게 비추는 거울로 삼았으면 합니다. 안개도 암초도 함께 헤쳐 나아가도록…

4월 26일 앵커칼럼 오늘 '내리사랑 치사랑'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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