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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변명은 쉽다' 아비규환이 된 부동산 시장

등록 2020.10.22 11:27

수정 2020.11.13 10:29

[취재후 Talk] '변명은 쉽다' 아비규환이 된 부동산 시장

서울 반포구 공인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광고가 붙어있다. / 조선일보DB

■ "매물이 없어요"

요즘 전세매물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취재차 부동산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단지이고, 1000세대가 넘을 정도로 큰 곳입니다. 그런데도 매물은 단 5건뿐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마저도 많은 편이랍니다. 없을 땐 1~2건에 그친다고 했으니까요. 비단 이 곳만 그런 것은 아닌 게 문제입니다. 1만 세대가 넘는 곳도 전세매물은 손에 꼽을만 하고, 그래서 전셋집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섰다는 뉴스에 놀라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전세시장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취재후 Talk] '변명은 쉽다' 아비규환이 된 부동산 시장
지난 1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TV조선 캡쳐


■ "전세 실거래 늘었다"


지난 18일입니다.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비공개 고위 당정청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참석했습니다. 여기서도 '매물 부족'이 화두에 올랐었나 봅니다. 그러자 홍남기 부총리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전세의 실거래 규모가 늘고 매매시장은 안정되고 있습니다."

통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는 통계의 일면을 볼 것이 아니라 통계와 전문가, 서민들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더 놀라운 건 홍 부총리조차 전세난민 처지에 빠졌다는 것이죠. 취임 초부터 살고 있는 서울 마포 전셋집은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내년 초까지 비우라고 했고, 경기 의왕의 본인집은 팔려고 했지만 세입자가 계약갱신권을 행사해 팔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본인이 주도한 임대차법을 온 몸으로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세가 늘고, 매매시장은 안정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온라인에선 홍 부총리에게 전셋집을 세놓지 말자거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보증금을 요구하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어쩌다 경제부총리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요. 그런데 어제 국토교통부가 흥미로운 자료를 하나 냈습니다.

 

[취재후 Talk] '변명은 쉽다' 아비규환이 된 부동산 시장
지난 16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 국토교통부


■ "저금리 때문이야"

자료를 요약하면, "전세난은 저금리 때문이야" 이렇습니다. 최근 5년 동안 전월세 가격이 안정세였는데 금리 인하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주장입니다. 금리가 떨어지면 세입자는 보증금 부담이 줄어 원하는 아파트 들어가려고 하고, 집주인은 수익이 줄어 보증금을 올린다는 거죠. 그런데 저금리 기조가 최근에 갑자기 정해진 걸까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는 올해 3월에 0.75%로, 5월엔 0.5%로 내린 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임대차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무리없이 전월세 시장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최근과 같은 전세난이 임대차법이 시행된 직후인 8월부터 급속히 일어났으니 국토부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지난 16일엔 국토교통부 국정감사도 있었습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최근의 전세난과 집값 상승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국민께서 걱정하시는 점이 많으신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전세난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의 뜻을 밝힌 건데, 장관의 뜻과 다른 국토부의 자료는 어떻게 봐야할까요? 장관은 전세난에 대해 사과하고, 국토부는 저금리 탓을 하고, 경제부총리는 전셋집을 못찾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팀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요.


 


■ 변명은 쉽다


부동산 시장은 말 그대로 정말 복잡합니다. 주거라는 기존 개념 외에도 투자과 투기가 얽혀있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전세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책을 할 때 실거주자와 투기꾼을 칼로 자르듯이 분리할 수 없고, 어느 한쪽 편만 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또 세입자와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정밀하고 세밀하게 건드리지 않는다면 균형이 깨지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세입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전세시장을 비롯한 부동산 시장의 위태롭지만 평화로웠던 균형을 깨트려버렸습니다. 집값을 잡겠다며 다주택자를 겨냥한 과세 강화 방안과 대출 규제를 쉴새없이 내놓았고, 실제 주택공급없이 말로만 으름장을 놓으니 거래는 줄고 집값은 폭등하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3기 신도시가 입주하는 2025년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정부만 믿고 집값 내리길 기다렸다는 사람들은 박탈감을 쏟아내고, 집을 옮겨야 하는 사람들은 천정부지로 오른 전셋값에 좌절하고, 내 집에 들어가 살고 싶어도 세입자가 계약갱신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못들어가는 집주인들은 한탄합니다. 경제부총리의 전세가 늘었다는 말도, 국토부의 장관의 송구스럽다는 말도 이제는 변명처럼 들릴 뿐입니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요.

변명은 쉽습니다. 하지만 변명은 많이 할수록 발전이 느려지고, 반성은 많이 할수록 발전은 빨라진다고 했습니다. 지금 변명보다는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인위적인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의 균형을 깨트린 점을 인정하고 잃어버린 균형을 다시 맞춰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 경제팀은 변명과 반성 사이 어디쯤 있을까요. / 송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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