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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45일간 20회'…靑 참모들이 '방송인' 된 사연

  • 등록: 2021.07.15 07:00

방송사 메인뉴스에 출연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왼쪽)과 박수현 국민소통수석. / 채널A·MBN 캡처
방송사 메인뉴스에 출연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왼쪽)과 박수현 국민소통수석. / 채널A·MBN 캡처

최근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 부부 외 챙겨야 하는 일정이 늘었다. 수시로 공지되는 '수석들'의 방송 일정이다. 과거에도 실장 또는 수석급의 출연이 종종 있었지만, 청와대 참모가 이렇게 자주 등판하는 것은 현 정부 들어 처음 보는 장면이다.

가장 두각을 보인 사람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다. 지난 5월 28일 임명 발표된 지 불과 사흘 만에 한 지상파 방송의 오후 시사프로그램에 전격 출연했다. 이미 문재인 정부 초대 대변인을 역임한 만큼, 업무 인수인계에도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을 테다.

박 수석은 보름 뒤 다른 지상파 방송의 또다른 시사프로그램에 등판했고, 이틀 후인 16일엔 보도채널 2곳에 잇따라 출연했다. 그리고 18일엔 하루 동안 TV와 라디오 매체 4곳을 돌며 '연쇄 출연 일정'을 소화했다. 그 이후 짧으면 사나흘, 길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방송에 등장하고 있다.

이철희 정무수석도 출연에 적극적이다. 지난 4월 16일 임명된 그는 지난달 8일 채널A 메인뉴스를 시작으로 TV와 라디오, 유튜브 등 매체들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1964년생 동갑내기인 두 참모가 5월 31일부터 7월 14일까지 45일 동안 출연한 방송 횟수는 총 20회(박수현 14회, 이철희 6회)로, 이 수석의 경우 4회로 나눠서 방송된 JTBC 유튜브 코너까지 나눠 계산하면 총 23회가 된다. 평균 잡아 대략 하루 건너 한 번 꼴로 수석급 참모가 방송에 등장하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이던 2005년 10월 브리핑 후 기자실을 나서는 모습. 그는 민정수석 내정 직후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제일 먼저 들은 말이 '비서는 입이 없다'는 것"이란 어록을 남겼다. / 조선DB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이던 2005년 10월 브리핑 후 기자실을 나서는 모습. 그는 민정수석 내정 직후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제일 먼저 들은 말이 '비서는 입이 없다'는 것"이란 어록을 남겼다. / 조선DB


■ '방송 고수' 두 참모

많은 참모 가운데 특히 이 두 수석이 적극적으로 방송에 나선 배경엔 무엇보다 이들의 방송 경험과 내공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 수석은 이미 19대 의원 시절부터 '대변인'과 '원내대변인' 등 타이틀을 줄곧 달고 지낸데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한 뒤 각종 방송에 꾸준히 출연해왔다.

박 수석 발탁 당시 청와대도 "남다른 친화력과 탁월한 소통 능력으로 언론으로부터 많은 신뢰를 받아왔다"며 "균형감 있는 정무 감각과 검증된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언론과 국민과의 긴밀한 교감을 통해 항상 국민의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 수석도 방송 바닥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고수 중 고수'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이런저런 방송에서 시사평론을 하던 그는 2013년 JTBC의 시사예능 프로그램인 '썰전'에 출연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고,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후 다시 '방송계'로 복귀해 여러 프로그램의 MC로 활약한 이력이 있다.

그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누가 '놀면 뭐하니' 해서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방송길에 들어와서 잘 됐고, 그래서 인생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회고했다.

여당 의원 출신이면서도 당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주류와 거리를 둬온 그는 지난 4월 정무수석으로 전격 발탁된 뒤 첫날 회견에서 "할 말은 하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헌신하는 참모가 되겠다"는 일성(一聲)을 남겼다.

방송 언어와 논리에 강한 그가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싫은 얘기를 해도 다 들으시는 굉장히 열려있는 분"이라며 '가슴에 손을 얹고' 대통령 칭찬을 해도 상대 측이 쉽게 반박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이러한 '비주류 이력'이 작용한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 '입이 없었던 비서들'

두 참모가 아무리 방송 출연에 강하다고 해도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지 없이 마음대로 나서긴 어렵다.

"청와대 비서(참모)는 입이 없다"는 출처 불명의 격언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권을 관통해온 '대원칙'이다.

김대중 정부 때 '2인자 실세 비서실장'으로 불렸던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청와대 근무 시절 "비서는 입이 없다"란 말을 반복했고,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 민정수석으로 내정된 직후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제일 먼저 들은 말이 '비서는 입이 없다'는 것"이란 어록을 남겼다.

이명박 정부의 류우익·하금열 비서실장도 취임 일성으로 '비서는 입이 없다'는 말을 꺼내들었고, 박근혜 정부의 허태열 비서실장도 내정과 동시에 '귀는 있지만 입이 없는 게 비서'라며 금언을 되새겼다. 정권은 수차례 바뀌었지만 모두 약속이나 한듯 비서가 되자마자 입부터 막기 시작했다.

다만 노무현 정부 임기말이던 2007년초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관철을 위해 참모들이 잇따라 방송에 출연한 사례도 있고, 현 정부에서도 정책실장이나 대변인 등 일부 참모들이 방송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요즘처럼 '준(準) 방송인'처럼 '정기적으로' 활약하는 모습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청와대는 '입이 무거운 곳'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미국 출국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서 유영민 비서실장(왼쪽)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참모들의 적극적인 방송 출연 배경엔 소통을 강조하는 유 실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 조선DB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미국 출국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서 유영민 비서실장(왼쪽)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참모들의 적극적인 방송 출연 배경엔 소통을 강조하는 유 실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 조선DB


■ 유영민의 '소통 경영'

청와대가 '프로급 선수'를 내세워 적극 소통에 나선 배경엔 유영민 비서실장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5년차 청와대에서 레임덕 저지와 국정동력 유지란 임무가 주어진 유 실장은 취임 직후부터 언론과의 접촉폭을 넓히고 적극적인 소통을 강조해왔다.

기업인(LG·포스코) 출신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올초 비서실장이 되자마자 그동안 다소 경직된 분위기였던 청와대 내부 조직 문화에 자율성과 기동성, 신속성, 현장성 등 기업경영 방식을 적용해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소통'에 방점을 둔 유 실장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에 이철희·박수현과 같은 '전문가급 방송 참모'가 큰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한다. 유 실장은 청와대 참모뿐 아니라 정부 주요 부처의 장관들에게도 언론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적극 권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 보이스(one voice)' 기조에만 갇히는 것을 벗어나 '빅 마우스(big mouth)'도 허용하는 청와대의 소통 강화 행보가 긍정적인 효과만 불러온 건 아니다. 소통은 바람직하지만 자칫하다간 이른바 '투 머치 토커'나 'TMI(Too Much Information)'로 흘러갈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수석은 지난 7일 한 방송사의 유튜브 프로그램에 출연해 '20대 1급 비서관' 논란에 휩싸인 박성민 청년비서관에 대한 발언을 하던 중 야당 보좌진협의회를 향해 "니들은 시험으로 뽑았냐"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자신도 국회 보좌관 출신이라며 한 말이었지만 후폭풍이 거셌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에선 "'라떼이즈홀스' 하는 꼰대가 된 모습" "아직도 본인이 정치평론가인줄 아시니 '본캐'에 집중하시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민주당 보좌진협의회장은 "마치 국회의 모든 보좌진들이 이른바 아무나 하는 '낙하산 집단'인 듯 호도된 것 같아 유감을 표명한다"는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여야 보좌진 양쪽으로부터 지적을 받는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도 결국 방송 출연이 발단이 된 셈이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최근 야당 보좌진협의회를 향해 "니들은 시험으로 뽑았냐"는 발언을 해 여야 보좌관협의회로부터 비판을 들었다. / 'JTBC Insight' 유튜브 캡처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최근 야당 보좌진협의회를 향해 "니들은 시험으로 뽑았냐"는 발언을 해 여야 보좌관협의회로부터 비판을 들었다. / 'JTBC Insight' 유튜브 캡처


■ '대통령이 출연한다면'

이외에도 크고 작은 구설수에 오르거나 논란을 부른 발언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방송 출연 전체를 나무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소통 과정의 '흠'보다 더 심각한 건 '불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1년'을 남기고 시작된 참모들의 '도전'은 결국 이 정부의 임기말 국정 성과와 함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미 '적극 소통'으로 방향을 정한 만큼, 그 기조를 내년까지 이어가며 '입 있는 비서도 가능하다'는 선례를 만들었으면 한다.

박 수석은 임명 첫날 "홍보가 일방향 광고라면 소통은 양방향 공감"이라고 했다. 결국 자신있는 사람이 잘 듣고 잘 말한다. 임기말임에도 지지율 40%대를 유지중인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주요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를 제대로 지키진 못했지만,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문 대통령도 참모들처럼 자신있게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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