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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세 입학연령 하향' 학제 개편안…문제는 '졸속행정'

  • 등록: 2022.08.02 15:22

  • 수정: 2022.08.02 15:32

지난 1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유치원에 어린이들이 등원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유치원에 어린이들이 등원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현재 만 6세(한국 나이 8세)인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만 5세(한국 나이 7세)로 내리는 '학제개편안'을 내놓았다.

구체적인 방식은 결정된 바 없지만 '2025학년도부터 한 학년을 15개월 출생 단위로 끊어 4년에 걸쳐 만5·6세를 통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박 부총리의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이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하면서 학제개편이 기정사실처럼 보도됐다.

이 방안대로라면 2019년에 출생한 아동 중 1∼3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한국 나이로 7세에 2018년생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후 2019년 4월∼2020년 6월생이 한 학년이 되는 식이다.

입학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도 꾸준히 나왔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당겨 사회진출 시기도 빨라지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데 사회적인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학제개편이 추진된 적은 없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대학생 1200명과 30~60대 학부모 1550명 대상으로 실시한 학제개편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반대'가 훨씬 많았고, 2006년에도 초중고대학교 교원과 교육전문가 대상 설문에서도 현행(만 6세) 유지 찬성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제 개편'이 마치 기정사실화처럼 나오자 교육계와 학부모들이 반발했다. 자녀들의 교육 계획을 세워야 하는 학부모들은 혼란에 빠졌고, 교육계에선 "이런 큰 개편을 논의 한번 없이 밀어붙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도 다양한 우려와 비판이 제기됐다.

3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자랑하는 임신·출산·육아 분야 네이버 대형카페 ‘맘스홀릭베이비’에선 소통 없는 학제개편안에 대한 비판 글이 여러개 올라왔다.

주로 ▲ '정책 시행 과도기에 해당 학생들이 겪게 될 '족보 꼬임' 문제 ▲ 한 살 많은 학생들과 같은 학년이 되면 생길 경쟁 문제 ▲ 사교육비 증가·학교폭력 우려 문제 등이 제기됐고, 일부에선 "육아를 안 해봤으니 저런 정책을 낸다"는 반응도 나왔다.

학부모들과 교원, 교육계 인사들의 반대 집회도 열렸다.

40여개 교육 단체의 연합인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범국민연대)'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학제개편 반대 집회를 열고 학제 개편안의 절차적 문제를 꼬집었다.

범국민연대는 "학생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사안임에도 장관 보고가 논의의 시작이 아닌 결론이 되고 대통령의 '조속한 시행'이라는 지시로 마침표를 찍었다"고 비판했고 교육부가 교육적 고려 없이 산업 인력 양성이라는 경제 논리로 정책을 추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교조들도 1인 시위에 나섰다.

교육 현장에서도 '5세 입학'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한국교원총연합회(교총)가 전국 유치원 및 초·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만662명 가운데 94.7%가 '반대'라고 했다. 특히 89.1%는 '매우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박 부총리의 소통 방식에 있었다. 사회적 논의 뿐 아니라 공청회 한 번 없이 무리한 정책을 추진한 게 화근이 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과거 사회적 논란이 커 보류한 정책을 준비 없이 갑자기 (업무보고에) 넣으면 실현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 부총리가 강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졸속행정'이라는 비판만 커지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나서 박 부총리를 향해 현장 의견을 청취해 적극 반영하는 등 추가적인 소통을 하라고 밝혔고, 윤 대통령도 "취학연령 하향 공론화를 추진하라"고 지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교육부는 뒤늦게 향후 국가교육위원회와 전문가, 대국민 설문조사 등 다양한 소통 창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 부총리도 "올해 연말에 시안이 마련될 예정이며 모든 것은 열린 자세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겠다"며 한 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제 개편 선결 과제인 유치원-어린이집(유보) 통합 문제, 학제 개편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국회 통과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다, 이번 사태로 정치권에서 박 부총리의 자격 논란까지 언급하며 앞으로도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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