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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펀치] 민경우 "한동훈 비대위는 시대의 소명을 책임진 비대위"

  • 등록: 2024.01.12 14:47

  • 수정: 2024.01.12 15:01

▶방송 : 1월12일 TV CHOSUN 유튜브 <강펀치> (10:20~11:20)
▶진행 : 강상구 부장, 류병수 차장
▶대담 : 민경우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


강상구> 오늘 좀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되자마자 자진 사퇴한 민경우 전 비대위원 모셨습니다. 사실은 제가 이분이 비대위원 여부와 관계없이 강펀치에 모시고 싶었던 분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오늘 제가 여쭤보려고 준비한 질문들도 사실은 비대위원 경력과 관계없는 질문들을 많이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사실은 이분이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얘기를 빅 마이크 잡고 빅 마우스로 빅빅빅하게 얘기해 주시길 기대했는데 민경욱 위원님 어서 오십시오.
저처럼 기대하시는 사람들 많은데 왜 그러셨어요? 그러게

강상구> 어쨌거나 비대위원으로서 좀 아쉬움이 있으시죠? 좀 하고 싶은 얘기가 좀 있었죠?

민경우> 저는 제안을 받고 제가 해야 될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 3년 정도 운동권 청산을 했었는데 지금까지는 좀 완곡하고 부드럽게 했었는데 어쨌든 다 동지들이고 이러니까 막 실명 까고 이러는 게 좀 그랬는데 제가 총선을 앞두고는 좀 더 본격적으로 해봐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쟤네들도 감지가 됐는지 저 녀석 가만두지 않겠다 이런 것 같고

강상구> 아니 사실은 그들의 입장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 아니겠어요? 그들의 사실은 그들의 일원이셨고 그 실체와 정체와 본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을 키워낸 분이시고

민경우> 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강상구> 다른 판력들은 그런데 정치에 발 들이기에는 다른 판력들은 이미 빠른 사람들은 당대표까지 한 사람들도 있는데 좀 약간 뒤늦게 하면서 이럴 거면 내가 진작에 할 걸 남들 배지 달고 할 때 같이 달걸.

민경우> 그런데 정치라는 게 어떤 정치의 독특한 어떤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두 가지 성향이 있었는데 하나는 공부하는 걸 워낙 좋아했고 두 번째는 약간 낭만주의 이상주의예요. 그래서 혁명을 하자 봉기를 하자 항쟁을 하자 이거는 저한테 맞는데 정치를 하자 이게 나한테 정말 맞을까 그런 생각은 들어서 지금도 두 가지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데요. 하나는 수학 선생으로 잘한다 이게 제 기본이고 근데 운동권이 너무 지금 망가지는 게 있어서 이거는 내가 좀 뭘 한다 인데 최근에 어디까지 왔냐 하면 얘네들 좀 심하다.
내가 좀 망가지더라도 내가 어느 정도까지는 한다 이런 생각까지 와 있었죠.

강상구> 혹시라도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설명을 해드리자면 민경우 대표는 한 번 들어가기도 힘든 서울대학교를 두 번 들어간 분입니다. 그것도 서울대 의대를 들어갔다가 자퇴를 하신 거죠? 그러고는 서울대 국사학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이유인즉슨 본격적으로 혁명을 하기 위해서

민경우> 예예.

강상구>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에요. 진짜 어쨌거나 비대위원을 만약에 계속했더라면 제가 아까 비대위원으로서 민경우라는 분에게 기대했던 바는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그게 실제로 하려고 했던 일인가요?

민경우> 예예 지금 보면 운동권은 자기의 운동 경력을 과장하는 한편에서 운동 운동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체계적으로 좀 은폐해 온 것 같아요.
한 30년, 40년을 그래서 그거를 외부인들은 잘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고 보수진영하고 쭉 일을 해보면 이 사람들이 잘 모르는구나 그렇기 때문에 헛발질을 많이 하는구나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저도 제가 공부를 하면서 느끼게 된 점이 새롭게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한 한 달 전부터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롯해서 유력한 어떤 논객들이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때가 됐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때가 되면 저는 뭐 역사적인 소명이 저한테 주어지면 피해 갈 일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 역할을 한시적으로 한 1~2년 정도 하겠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죠.

강상구>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그런데 민 대표께서 비대위원에서 물러난 이후로 86운동권 청산이라는 게 국민의힘 화두에서 약간 밀리는 느낌이긴 해요. 아쉬움이 크겠어요.

민경우> 저는 그거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두 가지가 같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86 운동권 청산 문제가 여전히 과제로 일단 레일 위에 올라왔기 때문에 계속 갈 거다 라고 보고 또 하나는 여전히 과학기술 문제랄지 저출산 문제랄지 뭐 경제 문제랄지 이런 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 근데 두 가지가 어느 것이 우선순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강상구> 그러니까 이제 한동훈 위원장은 저출산이니 과학기술이니 이쪽으로 정책 어젠다 던지고 민경우 대표께서 비대위원으로 있으면서 운동권 청산 얘기를 계속하고 이 투 트랙으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여튼 제가 91학번이거든요. 그러면 제가 91학번이 대학교 입학 딱 하면 그 당시에 껍데기를 벗고서 껍데기를 벗고서에 그 유명한 유시민의 항소 유서가 들어가 있죠.

민경우> 그래요?

강상구> 그걸 읽을 짬밥이 아니셨겠죠. 저는 그랬어요.

민경우> 후배들한테 읽으라고 그랬습니다.

강상구> 그래서 읽은 게 저예요. 그다음에 이제 뭐 뭡니까? 그다음에

류병수> 전환 시대의 논리

강상구> 그것도 있고 그거는 살짝 약간 그거 지나가고 저기 한국전쟁의 기원

민경우>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강상구> 그다음에 이제 해방전후사의 인식 대충 이런 거였는데 그러면서 제 대학생활을 지배했던 학교의 분위기는 통일 운동이었단 말이에요.

민경우> 예예

강상구> 딱히 운동권이 아니었는데도 제 분위기는 그랬고 그 인식 체계가 실제로는 제가 기자생활을 한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 지배했었어요. 그 인식을 벗어난 건 꽤 됐는데 우리 사회를 보면 그때 형성된 인식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계나 또 그리고 제 나이 또래나 그보다 약간 좀 어린 친구들의 인식 세계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들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이게 사실은 굉장히 감성적으로 확 와 닿는 얘기인데 한 꺼풀만 벗기고 보면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거를 탈피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저는 많이 들더라고요.

민경우> 주사파 또는 운동권 문제의 핵심은 87년 그러니까 80년대 후반에 운동권들이 갖고 있었던 혁명주의 급진주의가 세척되지 않고 지금까지 감정적 지적 유산으로 남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핵심적인 문제이고 그다음에 그런 것들이 현재 한국 사회를 질곡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그 얘기가 맞죠

강상구> 그렇죠. 그래가지고는 나중에 이게 나한테 그렇게 가슴 뜨거워지는 주제였던 통일 논의에 그 이면에는 김일성 만세가 있었다는 걸 알고는 진짜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나 뭐 한 거지? 이런 나 같은 사람들은 저 같은 사람한텐 뭐라고 해주시고 싶으세요?

민경우> 사실은 제가 이제 요즘 적극적으로 미는 것 중에 하나가 한민전이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통일 이론이 남한의 학생들한테 이제 미치는데 그때 이게 직접적 다이렉트로 미치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어려우니까 중간에 하나를 둬요. 위장 조직 같은 걸 두는데 그게 한민전이거나 조국 통일이거나 뭐 이런 건데 조국 통일도 조국 통일 그러면 좋은 얘기잖아요.

강상구> 얼마나 멋져요.

민경우> 근데 그 이면에 김일성이나 북한의 통일론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런 것들을 고통스럽지만 대면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고통스럽지만 대면해서 과거에 있었던 진실이 무엇인가를 파헤칠 때가 된 거죠. 그리고 제가 그런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거죠.

강상구> 좀 파헤쳐 주세요. 이 자리에서 좀 짧게 사실은 정말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정말로 이 감성적인 통일이라는 말만 들으면 얼마나 가슴 벅차 오릅니까? 그 뒤에 실제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민 대표님께서 그 논리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사실은

민경우> 저도 제가 만들기도 하고요. 30%는 만들었고요.
70%는 돼 있는 거를 그냥 뺏겼습니다.

강상구> 좀 설명을 좀 해주세요.

민경우>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80년대에 주사파의 핵심은 남과 북 그러니까 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대한민국 건국은 유엔이 세웠다 또는 미군이 세웠다 이런 얘기였거든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했던 대한민국은 그런 거였는데 80년대 이거를 운동권들이 이걸 뒤집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웠다. 남과 북한 중에서 북한이 우위에 있는 사회다 이런 북한이 정통성이 있는 사회다 라고 주장을 하고 이게 80년대 초반에 세팅된 이 견해와 어떤 생각과 패러다임이 지금까지 오는 거죠. 그리고 지금까지 오면서 이제 80년대 후반에는 조국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북한 주도의 북한이 보다 정통성이다 이런 것들을 주장하는 통일 운동을 했고 2000년도에는 이제 이게 영화계나 이런 걸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어떤 통일론 민족론 이런 걸로 전파된 거죠.

강상구> 결국은 이게 문제의 핵심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부터 시작돼서 한국전쟁의 기원까지 가는 그 어떤 다현사 까지 가는 역사 인식에서부터 딱 비롯된 거고 그 역사 인식이 최근 서울의 봄도 그렇거니와 1987도 그렇거니와 지금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거잖아요.
어디서부터 다시 바로잡아야 돼요?

민경우> 거기가 핵심일 거로 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회가 무언가를 재구성할 때는 지적 패러다임을 도입을 하는데 이를테면 17세기 영국이나 프랑스면 철학 경제학 이런 걸 할 수도 있는데 한 80년대 초중반의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은 주로 역사를 끌어 들어왔고 역사에서 그러니까 기존에 미국 그다음에 서방 세계 미군이 했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친일파가 세웠다. 북한이 역사의 정통이다 라고 바꾼 겁니다. 80년대 초반에 세팅된 이게 바뀐 거니까 이 얘기를 원래 그 시대로 돌아가서 이 얘기를 천착하고 반성하고 해서 이걸 뒤바꿔 놔야죠.

강상구> 뒤바꿔 놓기에 좀 적당한 트리거랄까 그런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요?

민경우> 좀 민감한 주제이긴 하는데 사실은 제가 볼 때 제가 최근에 좀 고통스럽게 기억하는 주제 중에 하나가 이승만입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친일파가 세웠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다. 북한이 정통이다 라는 얘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개차반으로 만드는 거

강상구> 일단 그래 놨죠.

민경우> 제가 85년 6년 7년 제가 3학년 4학년 5학년 때 왜 이승만을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공격을 했을까 그렇게까지 못된 인간으로 만들었을까를 돌이켜 보게 돼요. 그러면서 이승만이 제가 볼 때는 이거고 그거에 반대되는 게 김구인데 김구에 대한 논쟁이 있잖아요.
근데 김구는 지금도 존경할 만한 인물임에 틀림없는데 이제 이런 측면이 분명히 있어요.
그러니까 이승만의 대척점에서 김구를 띄우면서 이승만을 그렇게 했던 그런 역사가 있었던 거죠. 그런 몇 가지 트리거가 있습니다.

강상구> 그렇겠네. 결국은 이승만부터 세우면 그 어떤 근데 저는 답답한 건 그거예요.
대중문화계에서 그런 게 먹힐까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은 예컨대 서울의 봄이나 1987이나 이런 거는 잘 팔리는데 택시 운전수 이런 것도 잘 팔리는데 예컨대 연평해전 이런 거 인천 상륙작전 이런 거 다 망했거든요. 이런 거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민경우> 저는 두 가지가 있어 보이는데 그러니까 현재 사태의 중심이 누구냐는 건데 제가 생각할 때 서울의 봄이 좋아서 서울의 봄을 본다기보다 또는 우파 영화들이 싫어서 하는 것보다 왜냐하면 수도권에 있는 40~50대 인텔리들이 그들이 어렸을 때 갖고 있었던 어떤 정신 상태 어떤 의식 구조를 반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소비함으로써 그래서 진정으로 이 지금 현 상황의 주역들은 수도권에 있는 40~50대 인텔리들이 자기의 과거 역사를 계속 반추하는 과정에 있다 라고 생각하고 이거는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단 희망적인 것은 20~30대 청년들이 볼 때는 사실은 좀 우파적 세계관이 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봐도 그렇고 학생들하고 얘기를 해봐도 그렇고 우파적 세계관이 그러니까 한국은 자본주의의 첨단에 있기 때문에 우파적 세계관이 자연스럽습니다.
사실은 그러니까 역사 얘기를 하는 건 좀 고리타분하거든요.
그러니까 20~30대는 바뀌었죠.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40~50대를 설득하기 위한 작업을 하더라도 다른 한편에서는 20~30대를 설득해서 20~30대가 자연스럽게 40~50대와 경합하고 대체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죠.

강상구> 근데 대한민국은 불행히도 지금 심각한 저출산의 시대이기 때문에 20~30대를 다 합쳐도 50대 하나를 못 이겨요.

민경우> 그렇습니다. 그런 면은 인구 구성은

강상구> 그러니까 지금 현재의 정치 지형도 그 문제와 크게 연관이 있을 텐데요.

민경우>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니까 근데 인구 구성은 역사의식보다 더 기저에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거는 어쩔 수는 없는 문제인데 현행 조건 하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된다고 보죠.

강상구> 민주화운동동지회를 결성하셨죠? 지난해 거의 연말 가을쯤 겨울쯤

민경우> 8.15때 했습니다.

강상구> 여름이었구나. 그때 했던 말이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겠다 였어요. 쓰레기 실명으로 좀 지적해 주십시오.

민경우> 우리가 공통으로 합의했던 거는 반대한민국적 역사관 대한민국이 친일파가 만들었고 대한민국은 태어나서 안 될 나라이고 반대로 북한이 역사의 정통이다 이게 역사관이 핵심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지적한 게 있다면 사람만이 희망이다 해서 평등주의 같은 거 그다음에 함부로 국가기관을 불원시하고 폄하하는 그러니까 검찰 독재 걸핏하면 탄핵 이런 것도 운동권의 불행한 유산이라고 생각해요.
강상구> 운동권은 기본적으로 혁명을 했으니까 국가기관이 우습게 보여야 되고 국가기관을 우습게 봐야지 멋있어 보이는 거였겠죠.

민경우> 그렇죠 거기에는 조선일보도 들어가죠.

강상구> 조선일보가 국가기관은 아니고 하여튼 그렇긴 하지만 저는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비대위원이 됐으면 정말로 실명 비판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고 그랬잖아요.
비대위원은 이제 아니지만 실명 비판을 할 수 있잖아요. 정말로 이 쓰레기를 지금 역사관과 어떤 사상적인 국가기관을 우습게 보는 이런 기류를 지적하셨지만 그런 분위기를 딱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민경우> 제가 대표적으로 지적한 사람은 정청래 씨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정청래 씨가 최근에도 이낙연 씨 사례를 들면서 네가 민주화 운동을 했을 때 민주화 운동을 했냐 이런 비판을 하는데 정청래 씨야말로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보기 어려워요.
왜 그러냐 하면 88년에 조통위원장을 했거든요. 그거 사실 주사파 통일운동이고요. 89년에는 이제 미 대사관저를 점거 방화해서 한 징역 2년을 살았거든요. 그게 민주화운동이 있습니까? 민주화운동이라고 보기 어렵죠.

강상구> 그러니까 민주화운동동지회라는 것의 핵심은 민주화 운동을 진짜 민주화 운동을 얘기해 보자. 그러니까 반미 운동이 민주화 운동이었냐 그러면 지금 우리가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는 것 중에 상당 부분이 날아가지 않을까요?

민경우> 사실은 거기서부터는 조금 복잡해지는데 87년 6월 민주화운동 때 민주화 운동은 사실 우리 영미식 민주주의라기보다는 러시아식 인민민주주의였거든요. 85~6년도에 학생들이 많이 봤던 책들은 다 러시아 책이에요. 러시아 혁명사 책입니다. 플로레타리아 독재니 플로레타리아 민주주의니 한 그 민주주의였던 거기 때문에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했던 역할과 무관하게 학생들의 주관적인 의식은 급진주의에 상당히 물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그걸 다 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옥석을 가리는 작업은 해야 되는 거죠. 이제 지금부터라도

강상구>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지금 그냥 정청래 의원 대표적으로 얘기해 주셨는데 여기는 말 그대로 반미운동가지 민주화 운동가는 절대 아니었다. 그 대표적으로 얘기해 주셨고 몇 명만 더 그런 식으로 꼽아주신다면

민경우> 이인영 씨도 이인영 씨도 반미청년회라고 지하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하는 반미 청년회 회원이었어요. 그러니까 반미청년회 회원으로 고대 총학생회장을 하고 전대협 의장을 한 건데 지금은 이제 반미 청년회 회원이었던 건 싹 숨기고 전대협 의장만 남았던 거죠.
그리고 전대협도 민주주의를 위해서 민주주의 투쟁을 했던 조직이 아닙니다.
민족 해방을 위해서 자주를 위해서 했던 조직이라서 이인영 씨도 막 깨고 들어가면 따지고 들어가면 당신이 했던 민주주의 운동이 당신이 주장하는 것만큼 그렇게 순수한 민주의 운동이야 순수한 민주주의 운동이었냐라는 것을 사실은 저는 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강상구> 사실은 이인영 장관 시절에 얘기를 해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저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읽던 책을 지금 귀로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확 들더라고요. 아직도 그냥 그 시대를 여전히 살고 있는 것 같던데

민경우> 이인영 장관은 지금 얘기하는 거 보면 공룡이죠. 화석이에요.
화석 그러니까 87년에 갖다 놔도 아무 지장이 없는 얘기들을 그대로 해요. 근데 이인영 장관만 그러냐 하면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의 한 70명 정도가 운동권은요 운동권인데 한 50명이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강상구>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 중에서 70명 정도가 대충 운동권으로 분류가 되는데 그중에 50명은 크게 봐서 반미운동이지 민주화 운동가가 아니다

민경우> 그러니까 운동권은 대부분 주사파거든요. 그러니까 주사파가 9대 1 정도 90%였기 때문에 70명 중에서 50명 이상이 주사파 활동을 했다고 보면 되는데 그중에 거의 대부분이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과거 생각을 그대로 갖고 있어요.

강상구> 화석화 돼있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근데 명색이 현실 정치를 하면서도 그런 걸 탈피할 기회가 없었을까요?

민경우> 여기서부터는 인간의 어떤 복잡한 심리 상태를 볼 필요가 있는데 인간이라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운 자기반성이 없이는 청년 시절에 갖고 있었던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저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는데요. 저도 그랬는데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아주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떤 계기를 장사를 하고 이러면서 이걸 떨쳐버리지 않으면 그냥 과거 그냥 그대로 청년이 그냥 노인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거의 대부분 그렇다고 봅니다.

강상구> 지금 댓글로 질문이 나왔어요. 아마 이분들은 민주당 전현직 의원 중에서 이분들을 좀 좋아서 물어보는 것 같은데 임종석, 우상호 두 분은 어떠냐고 물어보시는데요.

민경우> 임종석 우상호는 그러니까 이인영하고 똑같습니다. 그냥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임종석은 새벽 그룹의 주사파의 아류인데 새벽 그룹의 일원으로 3기 전대협 의장이 돼서 전대협을 상징하는 사람이고 지금 임종석 임종석 씨의 생각은 이인영과 거의 다를 바 없고 우상호도 그러니까 반미구국학생동맹이라는 그러니까 조통 그룹이라는 연대 지하 조직의 성원이에요.
주사파 조직의 성원이에요. 근데 이 사람들이 그런 했지만 이인영 씨와 거의 같은 겁니다.

강상구> 허인회도 물어보네요.

민경우> 허인회는 전학련 삼민투였고요. 그다음에 전학련 삼민투로 그런 역할을 했고 불행히도 정치권 진출이 좀 실패했던 건데 생각은 그대로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전학련 삼민투는 주사파는 아니었는데 전학련 삼민투의 일부가 주사파로 가요.
근데 주사파 성향이 강했던 사람이죠.

강상구> 그런데 우상호 의원 같은 경우에는 사실은 그런 경력보다도 사실은 이한열 당시에 연대 총학생회장으로서의 그런 모습이 굉장히 많이 각인돼 있잖아요. 이 지점에서 조금 좀 고민스러워지는 대목이 있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주사파고 맞는데 그러면 이제 민주화 운동하고 선을 긋기가 좀 힘들어지는 거죠.

민경우> 그런 면은 복잡하기 때문에 그런 면은 저희가 더 연구를 하고 천착을 해야 될 걸로 보이는데요. 그래서 일단 현 시점에서는 우상호는 두 가지 가치 평가를 가능합니다.
하나는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운동의 대중화 그다음에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다양한 활동들을 했던 건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86년 87년에 연세대학교 주사파의 이론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두 가지를 같이 평가해야 되겠죠. 그리고 종합적인 평가는 나중으로 돌리겠습니다.

강상구> 박정희는 독재도 했지만 대한민국을 개발시킨 사람 산업화시킨 사람이기도 하다와 마찬가지로 우상호는 87년 항쟁의 결정적인 기폭제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주사파이기도 하다. 동시에 같이 봐야지 우상호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거다. 근데 이인영에 대해서는 거기까지만 안 봐주시네요.

민경우> 이인영도 두 가지 같은 역할입니다. 전대 의장으로서 역할을 했던 거죠.
그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 있고 그다음에 주사파 일원으로서 어떤 그런 책임을 역사에 책임을 져야 되는 측면이 있고 그런 거죠.

강상구> 지금은 그러면은 예컨대 이재명은 어떻습니까?

민경우> 이재명은 일단 운동권이 아니고요.

강상구> 족보가 없는 거네요.

민경우> 네 족보가 없습니다. 그리고 운동권을 왜 그렇게 주변에 운동권이 많으냐 하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그냥 무차별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운동권도 끌어들인 거죠. 그러면서 주변에 운동권이 많고 운동권스러운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거는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당시에 이재명 대표가 활동했던 그 당시에는 운동권이 좀 멋스러운 그런 거였기 때문에

강상구> 제가 기억하는 대학도 그랬어요.

민경우> 맞아요. 그게 우리의 자랑인데 왜 그렇게 됐을까 근데 그게 멋있어 보이니까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거지 그런 생각을 실제로 가진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재명 대표는 참 미스터리한 인물입니다. 한국 정치의 정말 최대 미스터리입니다.

강상구> 운동권으로서 운동권도 아닌 사람으로 지금 운동권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한 정청래 의원은 그 운동도 안 한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더라고요. 잘하는 병원 가야 된다면서 부산 무시하면서 그나저나 잠깐이라도 합류했으니까 이제 한동훈 비대위 얘기를 잠깐만 해보면 뭐랄까요? 내가 있었으면 좀 더 잘했을 텐데 뭐 이런 부분 어떠세요? 한동원 비대위 잘하고 있나요?

민경우> 한동훈 비대위는 보니까 한동훈 위원장의 역할이 워낙 압도적이에요. 굉장히 매력 있는 캐릭터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모범생처럼 처음에 느낌을 가졌는데 잠깐이지만 회의를 주재하고 이런 걸 보면 아주 카리스마 넘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한동훈 비대위원회의 가장 대부분의 비중이 한동훈 위원장 본인에게 있기 때문에 나머지 또 저를 포함해서 나머지는 역할이 미미했다 생각하고 제가 괜한 누를 끼친 것 같아서 지금도 약간 부담을 갖고 있죠.

강상구> 혹시 그런 일만 없었더라면 내가 있었더라면 더 잘했을 텐데 이런 부분

민경우> 저는 사실은 제가 이제 실명 비판을 하고 막 이러지만 저는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균형 있고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몇 가지 균형을 갖춰가면서 운동권 청산 문제를 좀 잘 했겠다 라는 생각은 있거든요. 균형이라는 건 뭐냐 하면 운동권 청산도 해야 되지만 한국 사회의 미래를 개척하는 일도 해야 되잖아요.
과학기술이랄지 저출산이든지 이거에 균형을 잡는 작업이 하나 있고 그다음에 운동권 청산을 할 때 인적 청산, 제도적 청산 사상적 청산 중에서 너무 극단적으로 가면 또 안 되잖아요.
그렇다고 너무 보신하면 또 안 된다고 생각해요. 청산할 걸 청산을 해줘야 되거든요.
수술할 걸 수술해줘야 되는데 그런 면에서 너무 극단적이지 않으면서도 뭔가 역사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을 하는 거 이게 제 역할이었다고 생각해요.

강상구> 인적 청산은 뭐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제도적 청산이라는 건 뭐예요?

민경우> 제도적 청산은 지금 경제적으로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 같은 거 386들이 너무 정규직을 토대로 해서 너무 자산이나 노동시장에서 역할을 하잖아요. 그런 거랄지 그다음에 저는 386 문제에서 가장 우려하는 건 안보입니다. 안보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보에 아주 취약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잘 안 하거든요. 근데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이랄지 이게 다 386이 386의 세계관이 확대되면서 만들어진 거라서 이거를 복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북한의 대남 위협이 상당히 가시화되는 조건에서 386이 해체시켰던 일련의 제도들을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렇게 봅니다.

강상구> 제가 91학번인데 91학번까지는 민경우라는 이름을 대충 알아요.

류병수> 전 94학번입니다.

강상구> 94학번만 해도 잘 몰랐나 봐요. 그래서 원래는 이렇게 나눠서 질문하는데 그냥 저만 질문을 드렸는데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대요.

류병수>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요. 한동훈 위원장하고 제가 지난주 토요일 연락을 했었는데 민경우 선배님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론이 좋지 않다고 얘기를 했더니 본인은 그게 왜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민경우 위원님은 비대위에 꼭 필요한 분이라고 저한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냥 사퇴 없이 가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사퇴를 자진 사퇴를 하시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어떻게 되시는 거예요?

민경우> 저는 사실은 정말 멘붕이었어요. 그러니까 한 저는 감옥도 갔다 오고 그랬기 때문에 이런 큰일을 좀 겪어본 건데 한 10년 동안 일을 안 겪다가 막 한겨레신문 이런 데서 공격을 해대는데 약간 멘붕이 왔어요. 왜 저게 문제가 되지 이런 거예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제가 다 사과한 건데 그것까지 문제가 되면 그런 면에서 멘붕 상태였다는 게 하나고 제 마음은 사실은 한동훈 비대위가 잘 가야 된다. 이거 이외에는 없었어요. 이게 모든 판단 기준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혹시라도 이게 잘하는 결정일까 못하는 결정일까를 잘 판단을 못하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한동훈 비대위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게 제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었고 그에 맞게 판단을 결정을 한 거죠.

류병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총선 출마 어떻게 하실 거예요?

민경우> 지금은 저는 좀 어려워졌죠. 그러니까 이 사태가 있었기 때문에 어려워졌기 때문에 그리고 제 목표는 저는 그렇게 거창한 목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얘기했던 그 시대 요구에 맞게 시대가 요구하는 운동권 청산 문제를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잘한다.
이거 이외에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고 있고

류병수> 총선 출마가 왜 어려워지셨다고 생각하시는지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민경우> 그래요. 아니 그렇지 않나요? 여론에 저렇게 뭇매를 맞았는데

강상구> 비대위에 참여하는 것과 출마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죠. 그건 그렇고 그거는 조금 더 이제 좀 논의를 해보실 문제고 제가 이렇게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비록 함께하지 못하지만 한동훈 위원장 이것만은 꼭 해주시라는 말을 카메라 보고 해주세요.

민경우> 한동훈 비대위는 단순하게 또 하나의 비대위가 아니라 시대의 소명을 책임진 시대의 소명을 체현한 비대위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대중의 어떤 여망 여망을 대중이 무엇을 희망하는가를 우리 모두가 이제 느끼고 있는 바잖아요. 저는 그에 걸맞게 좀 크게 포부 있게 당당하게 역사의 미래를 개척한다는 기분으로 활동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저도 미력하나마 그 길에서 제가 주어진 곳에서 역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상구> 나와 주셔서 감사하고 오늘은 첫 출연이시고 또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좀 약간 좀 어려운 얘기들 많이 했는데 다음에는 좀 현안 중심으로 한 번 더 또 출연을 부탁드려도 되겠어요.

민경우> 알겠습니다.


강상구> 다음 기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민경우> 고맙습니다.

류병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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