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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소년들의 우정 여행, 그 끝

등록 2018.12.19 21:45

수정 2018.12.19 21:48

화가 김병종이 그린 '생명의 노래' 연작입니다. 작고 사소한 생명체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따스하고 애틋합니다. 그는 '이것'을 들이마시고 사경을 헤맨 뒤 생명에 눈을 떴다고 했습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고향이 없다"고 말합니다. 열 살 때 '이것'을 마시고 쓰러진 뒤 그때까지 지녔던 유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축구스타 박지성도 어릴 적 '이것'에 중독돼 동치미 국물을 들이킨 적이 한두 번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연탄가스입니다. 1970년대까지도 한 해 3천의 고귀한 생명을 연탄가스가 앗아갔습니다. 가난했던 시대, 아픈 역사로만 알았던 일산화탄소 중독이 이 시대의 꽃다운 젊음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소득 3만 달러가 눈앞에 왔다는 이 시대에, 어이없는 후진국형 사고가 청춘들을 덮쳤습니다. 몇 만원이면 산다는 일산화탄소 경보기만 있었어도, 가스보일러를 거실 한구석 실내공간에 두지만 않았어도, 연통만 좀 세심히 들여다 봤어도 피했을 참극입니다.

실컷 늦잠 자고 빈둥거리기, 공연 영화 보기, 시집 소설책 읽기, 얼굴 몸매 가꾸기, 운전면허 따기… 수능이라는 감옥에서 풀려난 뒤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에서도 1순위가 친구들과 추억여행 떠나기입니다.

이제 대학으로 사회로 뿔뿔이 흩어지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함께하기 힘들기에 마지막 추억을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숨진 소년은 강릉 가는 열차표를 찍어 올리며 '우정여행'이라는 메모를 달았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한 모처럼의 자유가 얼마나 달콤했을까요. 소년들은 새벽이 오도록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펜션 방에 둘러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겠지요.

교육당국은 수능 뒤 청소년들이 방치돼 있는지 안전을 점검한다며 뒤늦게 법석입니다.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다"던 구호가 또 한 번 허망해졌습니다. 하나 하나가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 꽃 같은 아이들이 질식해 쓰러진 것은 모든 어른들의 죄입니다.

12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소년들의 우정 여행, 그 끝'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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