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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판문점 미루나무는 알고 있을까?

등록 2019.07.01 21:49

수정 2019.07.01 21:54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

박목월 시인이 가사를 붙인 이 동요, 듣고 부르며 자란 분이 많을 겁니다. 미루나무는 제가 어렸을 때도 시골 신작로에 많이 심었던 키 큰 나무, 포플러 한 종류입니다. 미국에서 온 버드나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 미류가 미루로 바뀌었지요.

하지만 지금 장-노년들께는 미류라는 이름이 익숙합니다. 북한이 체제의 야만성을 세계에 드러낸 판문점 도끼만행의 기억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1976년 초소 앞에 무성한 미류나무 가지를 치던 유엔군을 북한군이 습격해 도끼로 미군 장교 두 명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당시 포드 미국 대통령이 항공모함과 전폭기를 급파하면서 한반도는 전쟁 직전까지 갔습니다. 사흘 뒤 유엔군이 밀어붙인 미류나무 벌목작전에는 특전사 문재인 상병도 투입됐습니다. 미국 미류나무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는, 김일성이 사과문을 보내오면서 가라앉았습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그로부터 44년이 흐른 판문점에서 역사의 역설이 현실로 펼쳐졌습니다. 포드의 11대 후임 트럼프,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만났습니다. 전쟁의 세 당사자 정상이 전쟁이 멈춘 경계선에 나란히 섰습니다. 그 경계선을 현직 미국 대통령이 넘어가 사상 처음 북한 땅을 밟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아름다운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치켜세우고 초청했습니다. 말만 들어서는 마지막 냉전지대 한반도의 얼음이 금방이라도 녹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판문점을 메웠던 카메라의 파도가 빠져나간 지금, 미북 협상의 동력이 되살아난 것 말고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판문점의 만남이 역사의 물길을 뒤 바꾼 사건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이해타산을 앞세운 현란한 눈요기에 그칠 것인지, 판가름 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의 길로 나오지 않는다면 어제 판문점 이벤트는 오히려 한반도 평화의 여정에 장애가 될 수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을 강요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까지도 말이지요.

7월 1일 앵커의 시선은 '판문점 미루나무는 알고 있을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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