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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일기] 김민호 '데리다와 역사'

등록 2024.03.24 14:15

수정 2024.03.24 15:30

[한 문장 일기] 김민호 '데리다와 역사'

/에디스코 제공

 
"그러니까 세계 자체가 하나의 유희라는 것은, 그것도 기호화의 유희라는 것은, 이렇게 급진적인 무상성·무목적성을 드러내는 수사입니다. 세계에 궁극의 의미를 담보해 주는 심급, 이 세계에 궁극의 질서를 부여해 주는 별도의 타자 같은 건 없다는 소리죠. 텍스트-바깥이 없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 이제 '텍스트-바깥은 없다'로부터 여러 가지 귀결을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언제나 무언가는 다른 무언가의 인용·참조·반복으로서 체험되며 이것이 데리다에게는 사물·기호·세계가 현현하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것, 이런 참조 구조로 인해 세계 안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충만한 즉자적 필연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 (…) 우리에게는 무상하고 무의미한 이 세계를 진지하게 살아내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데리다에 대한 흔한 오해 몇 가지. 인간을 회의적 허무주의로 이끈 철학자라는 것, 텍스트의 유희에 집착하며 모든 것을 언어 해석의 문제로 환원했다는 것, 실제적인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

철학자 김민호는 책 '데리다와 역사: 데리다 철학에 대한 하나의 입문'에서 이 모든 오해를 반박하며 "데리다의 이념적이고 철학적인 여정"은 오히려 "역사성의 곁에서 개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유명한 '텍스트-바깥은 없다'는 명제를 들여다보자. (이 말은 '언어-바깥은 없다'는 의미로 곧잘 호도되며 숱한 곡해를 낳아 왔다.) 세계 자체를 기호의 운동으로 사유했던 데리다에게 역사를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근원적 폭력성을 안고서라도) 기호화하는 것, 즉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때 "기호의 운동을 관장하고 규제하는 초월적인 심급,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세계/역사에 궁극의 의미를 부여하는 메타적인 무언가는 없다는 뜻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 어떤 '바깥'으로도 환원되지 않고 정박되지 않는 기호 고유의 운동이 있고, 거기에 역사가 있고 우리의 생이 있"다.

'해체' 역시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데리다에게 해체란 이 '바깥'이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세계가 그 어떤 "즉자적 필연성을 주장할 수 없"고 "우연한 생성들에 의거"하는 곳이라면 우리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남을까? 다만 진지하게 이 생을 살아내는 것, 무상한 세계를 조금 덜 무상하게 만드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저자는 쓴다.

"삶을 언제나 더 사랑하세요. 살아남기를 그치지 말고 긍정하세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저는 어디에 있든 당신들에게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데리다가 친우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한 문장 일기] 김민호 '데리다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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