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정보기관 수장의 자격

등록 2019.05.28 21:45

수정 2019.05.28 21:56

2007년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질로 잡혔다가 풀려난 직후의 일입니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현지 호텔 로비를 돌아다니다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두바이 호텔에서는 국내외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로비에서 교인들과 사진도 찍었습니다. 국가 정보기관 수장의 노골적 공개 행보에 놀란 외국 기자들이 우리 취재진에게 "저 사람, 스파이 대장 맞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김 원장은 고향 동창회 홈페이지에 직함과 휴대전화 번호를 올려놓아 끊임없이 처신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정보는 기본적으로 숨기기 게임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국장 임명 사실도 숨겨오다 공개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992년 영국 정보기관 M15 여성 국장은 파파라치들에게 장을 보고 오는 장면이 찍혀 보도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보기관장의 행적이 사진에 찍히는 것은 총격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서훈 국정원장이 양정철 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을 사적으로 만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보도됐습니다. 국정원장의 일정과 동선 정보가 사전에 누출되지 않고는 추적하기 어려운 현장입니다. 서 원장은 그동안 각별하게 국정원의 정치 단절 의지를 강조해 왔습니다.

"이 정부 5년 안에 반드시 국정원은 정치로부터 완전한 단절을 이뤄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식사자리는 서 원장의 초대로 이뤄졌다는 게 양정철 원장의 주장입니다. 집권당 총선 전략 지휘자와 정보기관 수장의 사적 만남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범여권에 드는 정의당조차 "촛불의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민주평화당도 "총선 승리가 촛불혁명의 완성이라고 오만하게 떠들더니 국정을 농단했던 지난 정부와 다를 게 없다"고 했습니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 원훈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끼리 밥 한번 먹는 자리였다는 해명을 그토록 하고 싶었다면 정말 사인으로 돌아가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과거 사람들의 허물에 대해서 그토록 집요하게 책임을 따져 물었다면 스스로의 처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겁니다.

5월 28일 앵커의 시선은 '정보기관 수장의 자격'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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