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법 앞에 불평등한 나라

등록 2021.06.03 21:49 / 수정 2021.06.03 22:43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레이건 시대 미국 법무장관이 경찰에게 지명수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무슨 사연이었는지 보시지요.

로스앤젤레스 도심 대로를 무단 횡단하던 남자 두 명이 적발됐습니다.

경찰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 뒤 10달러씩 벌금고지서를 발부했습니다.

레이건 선거참모였던 두 사람은 나중에 법무장관이 된 에드윈 미즈와 CIA 국장이 된 윌리엄 케이시였습니다.

두 거물을 못 알아볼 리 없었겠지만 경찰은 가차없었습니다.

그리고 5년 뒤 경찰은 미즈 법무장관이 벌금을 내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고 체포영장을 받아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미즈는 연체료를 더한 백35달러를 물어야 했습니다.

워싱턴 경찰이 의사당 앞에서 시위하던 시장에게 뒷수갑을 채워 연행한 일도 있었습니다. 인도를 점거해 보행자에게 불편을 끼친 혐의였습니다.

경찰은 시장을 일곱 시간 동안 구금 조사한 뒤 보석금 50달러를 받고 새벽 한 시에 석방했습니다.

이용구 전 법무차관이 술에 취해 택시기사에게 욕을 하고 거칠게 멱살을 움켜쥡니다.

사건 발생 일곱 달 만에야 공개된 블랙박스 영상입니다. 그 일곱 달 동안 벌어진 일들은, 우리 정치권력과 경찰의 일그러진 초상이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킨 복마전 그 자체였습니다.

사건 당일 이 전 차관은 현행범인데도 조사받지 않고 귀가했습니다. 경찰은 운전자 폭행 가중처벌법을 적용하지 않았고 입건도 하지 않은 채 종결했습니다.

한 달 뒤 대통령은 그를 법무차관에 기용했습니다. 전임 차관이 윤석열 총장 징계에 반대해 사퇴한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징계위를 열려면 법무차관이 급히 필요하던 때였습니다.

보름 뒤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는 꿋꿋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는 사이, 담당 경찰관이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못 본 걸로 하자"고 덮어버렸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고도 경찰은 사건을 질질 끌었고, 며칠 전 또다른 거짓말이 드러났습니다. "이 차관이 누군지 몰랐다"던 주장과 달리, 공수처장 물망에 오른 유력인사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던 겁니다. 기사에게 천만 원을 건넨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운전자를 폭행하고, 사건 무마를 시도하고, 거짓말을 하고, 그러고도 차관 자리에서 버티다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지자 결국 사의를 표시했습니다.

그런 피의자가 정치권력의 두둔과 경찰의 은폐를 여섯 달 동안 받으면서, 법과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무차관 자리를 깔고 앉은 나라. 그리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이 나가는 나라가 바로 지금 대한민국입니다.

6월 3일 앵커의 시선은 '법 앞에 불평등한 나라'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