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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등록 2024.04.25 09:00

수정 2024.04.25 15:35

첨단 방호 다 모여라!⑪

2018년 4월 27일. 전 세계의 이목이 판문점에 쏠렸다.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 시시각각 쏟아지는 속보들 틈에서도 독특하게 이목을 끄는 것이 있었다. 북한 최고 권력자의 의전차와 경호원이었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북한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의전차와 'V'자 경호를 펼치는 12명의 요원들


메르세데스-벤츠 S600 풀만가드를 12명의 경호원들이 'V'자 형태로 에워쌌다. 이동하는 차량의 속도에 맞춰 뛰었다. '러닝경호'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소속 974부대원들로, 최고의 인간방패들이다. 이들은 고위층 집안 출신들로, 엄격한 신원조사를 통과한 뒤 '만들어진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뒷문에 부착한 황금빛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인장

번호판이 없는 의전차 뒷문에는 황금색 마크가 붙어 있다. '백두산' '수풍댐' '철탑' '벼' 문양 아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국무위원장'이 새겨져 있다. 김정은의 자동차, 다른 뭐가 필요한가. '판문점 의전차'는 2015년에 구입했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위로부터)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 메르세데스-벤츠 G바겐, 렉서스 LX570


김정은의 의전차 목록에는 SUV도 있다. 지난 1월 15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기록영화 '위대한 전환, 승리와 변혁의 2023년'에 등장한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에서 내리는 장면이 담겼다. 김정은은 벤츠 G바겐 장갑무장 버전도 갖고 있다. 2020년 8월 수해 현장시찰 당시엔 렉서스 LX570을 타고 갔다. 도로 사정이 나은 평양에서는 세단, 지방 방문 때는 SUV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2018년 평양에서 당시 남북 정상은 퍼레이드용으로 개조한 메르세데스-벤츠 S 600 풀만 가드를 탔다


김정은의 의전차는 유엔 대북 제재 위반이다. 북한 내로 들어가면 안 되는 사치품에 해당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사치품 제재를 결의했고, 2013년 사치품에 '호화 자동차'를 포함한다고 명시했다. 2018년 9월 18일 남북 정상의 평양퍼레이드 차량도 마찬가지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2019년 2월 27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은 마이바흐62와 메르세데스-벤츠 S 600 풀만 가드, 두 대를 가져갔다. 이 가운데 마이바흐62의 북한 밀반입 경로가 밝혀졌다. 아래 사진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선물한 아우루스


그렇다면 어떻게 북한에 가져갔을까. 오랜기간 항구를 돌아다니며 '세탁'한다. 김정은은 마이바흐62를 2018년 2월 이탈리아에서 구입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중국 다롄에서 수취인을 여러 차례 바꿨다. 일본 오사카를 경유해 부산항에 머물며 토고 국적의 화물선으로 갈아탔다. 이후 러시아 나홋카로 향했고, 10월 평양으로 들어갔다. 장장 8개월 동안 바다 위에 떠돌며 '확실한 때'를 기다렸다. 여기에 '시젯 인터내셔널'과 중국인 마위눙(Ma Yunong), 'ZM 인터내셔널'이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제조 브랜드들의 해명은 한결같다. "북한에 차량을 판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김 위원장은 의전차 목록에 한 대를 추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로 보낸 아우루스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북한의 차량번호판. 지역명과 다섯 자리 숫자의 조합이다


김정은의 의전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들은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했을 때부터다. 지금의 번호판 체계는 중국 방식을 원용해 2016년에 바꾼 것이다. 기본형은 파란 바탕에 흰색 글씨다. 숫자 다섯 자가 들어가는데 중간에 하이픈(-)이 아니라 가운데 점 '·'을 쓴다. 번호판의 크기는 450 X 140이다. 개인 승용차는 노란 바탕에 흰색 글씨다. 외교관과 국제기구 차량은 녹색 바탕에 흰색 글씨, 관용차량은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다. '평양 15·421' '함북 33·968' 등으로 지역명을 표기한다. 북한에는 1개의 직할시(평양), 3개의 특별시(라선 남포 개성), 9개의 도(평남 평북 자강 황남 황북 강원 함남 함북 양강)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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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공장에서 처음 출고하는 승리-58. 김일성 주석의 사진을 1호차에 내걸었다.


북한은 자동차를 독자 생산할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생산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철지난 해외 브랜드의 트럭 등을 라이선스 생산한다. 북한 최초의 자동차 생산은 1958년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원으로 평양 북동쪽 대동강 상류 덕천에 '덕천자동차공장'을 지었다. 여기서 소련의 트럭 GAZ-51을 복제해 승리-58로 이름붙였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북한이 자체 생산했다고 주장하는 트럭 '태백산96'. 사실은 러시아 카마즈의 상용차를 불법 복제한 것이다. 앞 그릴 위에 카마즈(KAMAZ) 상호가 보인다


덕천자동차공장은 북한 자동차의 80% 이상을 책임졌고, 책임지고 있다. 1959년 10월 이후 승리-58의 파생형 트럭 '자주호' '갱생호' '집산호' '태백산' 등을 생산했다. 마이크로버스인 '충성호'와 버스인 '천리마호'도 이곳에서 만든다. 1975년 승리자동차로 사명을 바꿨다. 2000년부터 승리-58의 현대화 버전 양산에 주력하고 있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지프형 차량도 덕천자동차공장의 주요 생산모델 중 하나였다. 소련의 GAZ-69를 그대로 들여왔다


북한의 자동차산업은 군수산업의 일부다. 트럭 아니면 지프형이다. 승용차는 논외다. 세단은 처음부터 들여오지 않았다. GAZ-69도 덕천자동차공장의 주요 생산품이었다. 일부 당 고위직들의 승용차는 수입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도요타였다. 승리자동차는 1988년 메르세데스-벤츠 W201을 무단복제해봤는데, 형편 없었다고 한다. 폭스바겐 파사트를 복제해 자주(Jaju·自主)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말로만 전한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평화자동차 휘파람


1998년 통일교가 자동차로 평양을 뚫었다. 2000년 남포시에 설립한 평화자동차(Pyeonghwa Motors)다. 통일교의 'Pyongwa Motors'와 북한 '련봉(Ryonbong General Corp)' 사이의 합작투자였다. 평화는 피아트 등 해외 라이선스로 2002년부터 승용차, 미니밴, SUV 등을 만들었다. 북한산(産) 세단의 시작이다. '휘파람' '뻐꾸기' '준마' 등의 모델명으로 팔았다. 하지만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할 수가 없었다. 가격은 1만 달러부터 시작했다. 당시 북한 주민의 평균 소득은 연간 1300달러 정도였다. 소수의 북한 엘리트 집단도 접근하기 힘들었다. 연간 1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에서 2003년에 만든 차량은 314대였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평화자동차 준마. 쌍용 체어맨과 똑같다


2006년 여름, 북한 잡지 '대외무역(Foreign Trade)'에 광고가 실렸다. 평화의 새 고급차 '준마'인데, 그냥 '쌍용 체어맨'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체어맨'을 반조립 상태로 들여왔다. 체어맨 역시 메르세데스-벤츠의 이전 세대 E-클래스 디자인을 기반으로 했었다. 그나마 '준마'가 조금 팔린 건 이 때문이다. 김정은과 북한 고위직들의 '최애 브랜드'가 메르세데스-벤츠다. 적자가 쌓여가던 평화는 2012년 북한에서 완전히 발을 뺐다.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사망했다. 당시 갖고 있던 지분 70%를 모두 북한에 넘겼다. 평화는 2013년부터 폭스바겐, FAW, 둥펑, 도요타, 닛산 등을 라이선스 생산하고 있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평화자동차 뻐꾸기


북한에서 '휘파람'과 '뻐꾸기'는 연인들을 의미한다. 집 근처에 가서 휘파람을 불거나 뻐꾸기 소리를 내 만난다. 모델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작품이다. 2004년 뻐꾸기 출시 당시 사진을 보여줬더니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라고 말했다고 한다. 휘파람은 피아트의 세단 시에나, 뻐꾸기는 피아트의 소형상용차 도블로가 기반이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승리자동차 공장 내부


승리나 평화 등 북한의 자동차공장이 풀가동하면 연간 최대 3만 대 가량 생산할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실제 생산량은 2천~3천 대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북한은 2018년 2600여 대, 2019년 2400여 대, 2020년 2500여 대, 2021년 2300여 대를 생산했다. 설비가 열악하기도 하고, 전력공급이 자주 끊겨 공장 가동에 지장을 주는 일이 잦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평양 시내의 모습


북한의 자동차 수가 가장 많았던 해가 2017년이다. 등록을 기준으로 29만2천여 대였다. 2021년에는 25만3천 대로 줄었다. 2021년 북한 인구 2597만여 명을 감안하면 자동차 보급률은 1000명당 9.7대다. 아이티(1000명당 11대), 에티오피아(1000명당 10대)와 비슷하다. 현재 북한보다 자동차 보급률이 확실히 낮은 나라는 소말리아(1000명당 5대), 콩고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각각 1000명당 4대) 4개국 정도다. 
 

 

[차담차담] '휘파람 다음엔 뻐꾸기로 하라우!'
평양의 운전교육 차량들


북한에서 운전면허를 따려면 먼저 노동당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시·도에 1곳씩 운전원 양성소가 있다. 여기서 1년간 배워야 한다. 면허시험은 1년에 두 번, 4월과 9월이다. 4급부터 1급까지 있으며, 1급은 설계와 정비까지 해내는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의 운전면허 보유자는 '전문직' 대우를 받는다. 이렇게 면허 따기가 쉽지 않다보니 지방에는 무면허 운전이 많다.

(사진 출처: 나무위키, 위키피디아, 위키미디어커먼즈, www.thespeedtrap.net, www.autojosh.com, 조선중앙TV, 노동신문, NK News,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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