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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운? 운이 없는 걸 왜 빌어?"…교육현장 화두로 떠오른 '문해력'

등록 2024.11.05 17:00

수정 2024.11.05 17:28

'무운? 운이 없는 걸 왜 빌어?'…교육현장 화두로 떠오른 '문해력'

 

"당신의 무운을 빕니다."란 문구가 붙은 서울의 한 타로 가게 앞. 초등학교 5학년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옆에 있던 30대 이모에게 물었다. "이 가게는 왜 손님이 운이 없기를 빌어? 운은 많아야 좋은 거잖아."

전쟁터에서의 운을 뜻하는 '무운(武運)'을, 운이 없다는 '무운(無運)'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고객의 행복과 건승을 비는 타로 가게는, 졸지에 아이의 눈에 '되는 일 없기를 바라는 가게'로 비쳐버렸다. 사교육 1번지인 서울 대치동에 거주하며 영재고 진학을 목표로 한자는 물론 안하는 공부가 없는 조카였기에, 이모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일상 생활에서 '무운을 빈다'는 말을 들어봤다면 나올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나마 '없을 무(無)'란 한자를 안다는 걸 기특하게 여겨야 하는 걸까.

요즘 아이들의 이같은 해맑은 질문 사례는 쏟아지고 있다. 야구장 중계 판에 '우천 시 취소'를 보고 "우천시? 시흥시나 광명시같은 덴가?". '심심한 사과'에 "사과(apple)가 심심할 수 있다니…." 철학적인 고민에 빠지거나, "시발점"이란 말에 "선생님이 욕했어요!"라며 충격을 호소하는 식이다.

더 이상 웃지못할 일이 되버리자, 서울시교육청이 정색하고 실태 조사에 나섰다. 문해력 등 진단검사를 오늘부터 나흘 간 실시하는데, 신청 학교가 1년새 2배 이상 늘었다. 총 525개교 9만 4000여 명[초4·초6·중2·고1] 학생이 문해력 시험대에 오른다.
 

 

'무운? 운이 없는 걸 왜 빌어?'…교육현장 화두로 떠오른 '문해력'
서울 정목초등학교 성낙경 교장

서울 정목초등학교 성낙경 교장은 "일선 교사들이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짧은 길이의 동영상(숏폼) 컨텐츠를 많이 보면서, 독서 시간이 줄어든게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성 교장의 우려는 이미 통계로도 나타난다. 통계청이 실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독서량은 5년 전에 비해 20% 이상 줄었다. 2021년 OECD 통계는 더욱 충격적이다. 주어진 문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줄 아는 한국 청소년은 25.6%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OECD 평균은 47.4%였다.

다른 나라도 아닌, 사교육과 교육열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에서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학과 교수는 "공적 언어와 실생활 언어 체계의 불일치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부모가 한자어를 풀어서 설명하는 등의 세심한 교육을 해야 문해력이 길러집니다. 그런데 아이 이전에 부모가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들이 꽤 있죠."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에 혀를 차기 전에, 부모부터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가정 교육에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취임 후 첫 결재 안건으로 '서울학습진단치유센터' 확대 운영의 건을 선택했다. 지역별 교육 격차와 학력 부진을 최대한 개선하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공교육이 마주한 대상은 녹록치 않다. 하루 평균 4시간 47분 스마트폰을 사용[과기부, 2016년]하는 요즘 10대 청소년들이다. 툭하면 '교육 문제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스마트폰도 할 말은 많다. 대세가 된 이 '문명의 이기'가 오히려 문해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반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AI 디지털 교과서'란 사상 초유의 수업 혁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아이들의 문해력은 도입 이전과 이후 어떻게 달라질까, 아니 달라져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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