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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플랫폼 차별금지' 합의…국내 규제입법 '암초'

  • 등록: 2025.11.15 오후 14:34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우리나라와 미국이 디지털 서비스와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할 때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말자는 내용이 담긴 공동 합의를 발표했다. 국내에서 추진되던 여러 플랫폼 규제 법안들에 사실상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정부와 국회가 준비해 온 법안들이 이번 한미 합의와 부딪치면서 법안 내용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14일 발표된 한미 공동 팩트 시트에 담긴 디지털 분야 조항의 핵심은 앞으로 한국이 법을 만들거나 바꿀 때 구글이나 애플 같은 미국계 플랫폼 회사들만 더 불리하게 대우하지 말라는 차별 금지 원칙이다. 특히 네트워크 이용료나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콕 집어 미국 회사들이 보기에 사업을 방해하려는 불필요한 장벽으로 느껴질 정도의 규제는 피하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또한 데이터의 자유로운 국경 간 이동을 촉진하기로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포함한 데이터가 미국 등 해외 서버를 오가며 저장되거나 이용되는 일이 더 쉬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앱, 게임, 동영상 같은 디지털 상품에 관세를 매기지 말자는 국제적인 약속도 계속 지지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합의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여러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법안(온플법)들과 부딪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법안들은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시장지배적 플랫폼을 따로 지정해 여러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예를 들어 자기 회사 서비스나 상품을 검색 상단에 올리는 행위인 자사 우대를 금지하고 입점업체를 차별하거나 다른 플랫폼 이용을 막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수수료나 광고비 기준, 상품 노출 순서 같은 상세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충돌 지점은 이 시장지배적 플랫폼 지정 기준이다. 법안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매출액이나 이용자 수 등을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법은 모든 플랫폼에 적용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점유율이 높은 미국계 거대 플랫폼들이 대거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여기서 미국 입장에서는 법안의 기준이 사실상 우리 기업을 겨냥한 것이라면 차별로 보겠다고 할 수 있고 우리나라는 매출액이나 이용자 수 기준은 객관적이라고 맞설 수 있다. 이 갈등이 실제 통상 분쟁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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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은 그동안 플랫폼 규제를 주도해 온 공정거래위원회의 행보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독과점에 신속하게 대응하겠다", "입점업체와 소상공인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다.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바로잡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이번 한미 합의로 입법 방향에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안의 강도는 유지하되 차별 소지가 없도록 표현이나 구조를 다듬는 방향으로 조정될 수도 있고 아예 강력한 신법 제정을 접고 기존 공정거래법이나 전자상거래법 등 개별 법안을 고쳐서 규제하는 분산형 방식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정부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오가고 있는지 대통령실과 각 부처 간의 조율 등이 필요할 전망이다.

이번 합의에서 '데이터 국경 간 이전을 촉진한다'는 조항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엄격한 개인정보 규제와 긴장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최근 중국 등 해외 직구 플랫폼의 개인정보 이전 문제로 논란이 있었던 만큼 이 조항은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쉽게 말해 내 정보가 해외 서버를 오가며 저장·이용되면 서비스는 편리해질 수 있지만 내 정보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걱정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합의가 당장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나 플랫폼의 데이터 규제 완화로, 즉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더 많이 해외로 나가는 것으로 이어질지는 지금으로서는 확실하지 않다.

결국 지금부터 가장 궁금해지는 것은 '그래서 국내 플랫폼 규제가 약해지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강력한 단일 법안 대신 기존 법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점쳐진다. 일각에서는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가 약해지면 국내 기업도 같은 수준으로 완화될 수 있지만 반대로 글로벌 기업에 대한 규제는 후퇴하고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만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공정위가 강조해 온 소상공인·입점업체 보호 명분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통상 마찰을 피하면서도 입점업체를 보호할 다른 방법을 찾을지가 관건이다.

이번 한미 팩트 시트는 한국 정부와 국회에 어려운 숙제를 안겨줬다. 플랫폼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상공인을 보호하려는 규제의 목적과 통상 마찰이라는 현실적인 리스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과의 합의를 존중하면서도 국내 플랫폼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찾기 위해 앞으로 정부와 국회의 논의가 더욱 복잡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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