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전체

[한 문장 일기] 김유림 '단어 극장'

등록 2024.07.26 15:55

수정 2024.07.26 15:57

[한 문장 일기] 김유림 '단어 극장'

/민음사 제공

"이미 주어진 세계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그리워하는 일이 곧 현실의 물건을 만지작거리고 쌓아올리는 일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그때쯤에 이미 깨달았던 걸지도 모른다. 완성이 요원하면 요원할수록 그리움이 생생해져서 현실이 된다는 사실도. 이 모든 깨달음이 나를 지금의 글쓰기로 데리고 왔다. 나는 단어를 그리워하는 것이, 단어가 이미 품고 있는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는 일보다 좋다. 단어의 바깥에서 영원히 그리워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 '커다란 건물'

이미 있는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쌓아올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예술의 일임을, 작가는 일찍이 알았던 걸까? 아니, 더 정확히는 '완성이 요원한' 그 세계 앞에서 한없이 서성이며 그리워하는 것까지가 예술의 일임을.

작가가 축조한 낯선 세계에서 나는 못내 즐거웠다. '검은'이라는 단어가 주위를 물들이는 방식과, 고단한 일상에서 '바캉스'가 튀어나오는 순간들을 헤아리며. 내 생각은 매번 나 같은 방식으로만 전개되고 말아서, 경계를 흐리고 안팎을 뒤집는 이런 책들이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

물론 이 역시 '단어 극장'에 대한 임의접속일 테지만, 작가가 그것을 허했으므로 나는 책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멈춰서 떠나지 않는다.

 

[한 문장 일기] 김유림 '단어 극장'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