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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호 앵커칼럼] 유쾌한 영부인

등록 2017.05.16 20:21

수정 2017.05.16 20:25

루스벨트 대통령이 부인 엘리너에게 시(詩)를 지어 바쳤습니다. '나의 엘리너는 빠지고 말았네 슬프고 두려운 운명 속으로 워싱턴의 아내들이 살아야 했던 그 끔찍한 삶 속으로….' 엘리너도 사생활을 잃는 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평범한 루스벨트 부인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활발한 참여형(型) 퍼스트레이디로 남았습니다.

엘리너는 뉴딜정책 초기 7000㎞를 여행하며 남편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메모가 너무 많아, 루스벨트는 하루에 석 장만 받았습니다.

로절린 카터와 힐러리 클린턴이 엘리너를 잇는 정치적 활동파로 꼽힙니다. 반대편에 매미 아이젠하워, '레이디 버드' 존슨, 베티 포드, 바버라 부시가 있습니다. 한 발짝 물러나 남편을 따뜻하게 감싼 고전적 내조형입니다. 한국의 영부인도 어느덧 열한 분입니다.

다소 튀는 성격에 영향력을 발휘한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온화하고 조용한 내조형이었습니다. 유교 전통, 그리고 안방 권력에 대한 거부감 탓이었을 겁니다.

청와대 새 안주인인 김정숙 여사는 지금까지 못 보던 영부인입니다. 명랑 쾌활 소탈합니다. 김 여사는 취임식에서 한복 대신 양장을 했습니다. 집앞에 온 민원인에게 음식을 내줍니다.

청와대로 이사하면서 가방을 끕니다. 남편이 관저에서 첫 출근하는 아침 핑크빛 원피스차림으로 배웅합니다. 등을 토닥이며 인사합니다.

"가세요 여보, 잘 다녀오세요."

옷매무새도 가다듬어줍니다.

"자 다녀와 여보 멋있네. 당신 최고네."

청와대에 발랄하고 따스한 기운이 감돕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처복도 많습니다. 부인 미셸이 퇴임 여론조사에서 68%를 얻어 남편 53%를 훨씬 앞섰습니다. 다음 대선에 미셸을 밀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비결은 국민의 마음을 산 진정성입니다.

미셸은 백악관 내내 생머리 스타일을 하다 원래 곱슬머리로 돌아왔습니다. 퍼스트레이디가 매우 힘든 역할이라는 걸 말해줍니다.

김정숙 여사도 열린 생각과 반듯한 몸가짐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리라 기대합니다. 또 하나 바람이라면, 거리의 볼멘소리를 전해 바른 정치를 펴게 하는 '안방 야당' 역할입니다.

앵커칼럼 '유쾌한 영부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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