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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한동훈, 뭘 기다리나

등록 2023.12.19 10:33

수정 2023.12.19 10:52

[취재후 Talk] 한동훈, 뭘 기다리나

한동훈 장관이 1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한동훈 비대위'를 놓고 여권이 며칠째 '대혼돈' 상황이다.

본인 공천 여부가 최우선 관심사인 여당 의원들 다수는 주판알을 굴리며 유불리를 따지고, 총선 패배 위기감에 불안한 수도권 신인들은 '누구든 판을 흔들어야 한다'고 호소하지만 되려 자신들이 먼저 흔들리는 형국이다.

'신(新)핵관'으로 꼽히는 이철규 의원과 몇몇 친윤 인사들은 '한동훈 비대위'가 불가피한 이유를 직간접적으로 설파중이라 하고, 그에 반발하는 세력들은 '이철규가 한동훈으로 몰아간다'며 갖가지 종류의 '지라시'를 생산해내고 있다. 어정쩡하게 중간에 낀 이들은 '그 좋은 한동훈 카드를 지금 써먹기엔 아깝지 않느냐'며 '다음을 위해 아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행 체제'인 당 지도부는 당원과 국민 여론을 살핀다며 눈치를 보고, 영남 의원들(일부)은 '당이 망한들 공천만 받아내면 내 배지는 4년 더 연장된다'는 안일함에 빠져있다. 위기 타개에 앞장서야 할 중진들은 별 존재감 없이 '고담준론'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얘기들만 늘어놓는다.

지난 11일 밤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쇄신의 주도권'을 잡은 여당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김기현 대표의 사퇴와 맞물려 급부상한 '한동훈 비대위'가 워낙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길인 만큼, 갑론을박만 일주일째 반복됐다.

당사자인 한동훈 장관은 이런저런 입장 표명 없이 '추이를 지켜보는' 모양새다. 대신 여의도에서 '민심'이 뭔지, '윤심'이 뭔지 내세워 '연석(連席) 대토론'을 벌이고 있지만 '결정적 한방'은 보이지 않는다.

이와중에 한 장관은 '당원과 지지자가 바라지 않는다면 비대위원장을 맡을 이유가 없고, 향후 입당할 생각도 없다'는 측근발(發)인지 본인발인지 모를 어중간한 입장만 흘러나오고 있다.

한 장관은 왜 먼저 결단하지 않을까. 장관직을 선제적으로 던지든지, 아니면 '저는 정당 정치에 관심없고 장관직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입장문을 법무부 대변인을 통해 내놓으면 간단히 정리될 일이다.

임명권자의 결정 전에 후임도 없이 장관직을 던지는 게 옳은 선택이냐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비슷한 길'을 갈 때 지켜야 할 도의(道義)지, '정치의 길'에 들어설 때 적용될 기준은 아니다. 정치권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법무차관 대행체제'까지 거론돼왔다. '수평적 당정관계'를 과제로 삼은 정당을 이끌겠다면, 시작부터 '대통령의 결정'이 아닌 '본인의 결단'이 우선돼야 한다.

한 장관이 만약 비대위를 맡게 된다면, 이는 국민의힘은 물론 한 장관 개인으로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되는 선택이다. 법무장관까지는 검사라면 언젠가 한번 꿈도 꿔봤을 미래의 한 부분이었겠지만, 비상체제의 정당을 대표로 이끈다는 건 적어도 그의 인생 계획엔 전혀 없었을 테다.

비대위는 곧 '검사의 연장선'이 아닌 '정치인 한동훈'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그동안 법조인으로 쌓아온 모든 공과(功過)는 영욕(榮辱)의 역사로 흘려보내고, 흙탕물 투성인 정치의 세계로 그 물을 뒤집어쓰면서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이다.

'추대'란 이름의 레드카펫은 당장엔 편하고 깔끔해보이겠지만, '큰 정치'를 꿈꾸는 신인에게는 이런 쉬운 데뷔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2021년 3월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는 그 자체만으로 대선 정국을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돌풍이 됐다. 누군가의 선택에 떠밀려 나오기보단 스스로 때와 장소, 방식을 결정했고, 유력 노정객은 이를 '별의 순간'으로 평가했다.

100% 일치된 당원의 요구로 정계진출을 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있을법한 모습이다. 본인에 대한 지지가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해 선두에 서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정치 리더십이다.

영남 현역 의원들이 중심이 된 당내 기득권 그룹은 한 장관의 '정치적 불예측성(unpredictability)'을 가장 두려워한다. 술도 안 마시고 골프도 안 치며 기성 정치권에 빚도 없는 그가 '조선제일검'의 칼끝을 당내 개혁과 쇄신으로 향하게 할 경우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특정 그룹의 '물밑작업'으로 당의 중지가 모인다는 의심이 제기되면 '추대'가 된다 한들 시작부터 힘이 빠질 거란 우려도 있다.

한 장관의 '골든 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본인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 '진흙탕'으로 뛰어들던지, 아니면 법무행정의 수장으로서 정치권과 결별하겠다는 선언을 하든지, 결단을 서둘러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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