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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일기] 유디트 헤르만 '레티파크'

등록 2024.01.19 17:50

수정 2024.01.19 19:33

[한 문장 일기] 유디트 헤르만 '레티파크'

/마라카스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각 케이크를 다 먹었다. 내가 지금껏 늙은 사람들한테서만 보아 온 그 특유의 강렬한 탐욕으로 케이크를 먹었다. 그에게 호모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짐작건대 중요한 건 내가 그를 위해 조각 케이크를 샀고, 내가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그가 병들기 전에 자두 케이크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었다. 이 모든 게 중요했고, 그중에서 분명 또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중요했다."

- '시'

이 대목을 읽으며 아빠와 함께 무언가를 먹던 기억을 떠올렸다. 동생과 나는 아빠의 취향을 잘 안다고 여겼는데, 우리가 준비해 간 것은 늘 조금씩 모자랐다. 투덜대고 불평하면서도 아빠는 자기 몫의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 시큰둥해 했지만 표정으로는 재미를 숨기지 못했다. 그 순간이 어쩌면 아빠에게 중요했다는 것,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그런 기억만이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레티파크'는 읽는 사람을 추동하는 책이다. 한 편을 통과할 때마다 기억의 여기저기가 건들리고, 그 부피만큼 내 이야기가 옆에 쌓인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읽는 사람을 앉았다 일어서게 하는 책. 말하고 쓰게 하는 책. 다 읽고 나면 내 안의 17가지 장면이 불거져 나올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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