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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감독은 잘려도 말이 없다"…손혁 감독 사퇴에 부쳐

등록 2020.10.12 09:32

수정 2020.10.12 09:36

[취재후 Talk] '감독은 잘려도 말이 없다'…손혁 감독 사퇴에 부쳐

지난해 11월 취임식 때 손혁 키움 감독의 모습. /연합뉴스


1.

감독은 잘려도 말이 없다.

손혁 감독에게 연락을 넣었지만 닿지 않았다. 자진사퇴 기사가 나오고, 구단의 보도자료가 발표된 상황에서 복잡한 심경을 전하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해본다.

대신 짧막한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제가 역량이 부족했고 채울 것이 많아 사퇴하게 됐습니다. 더 공부하며 노력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을 갖을 계획입니다. 그동안의 고마움 항상 맘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손혁 감독은 싫은 내색을 않고 늘 밝은 표정을 짓던 지도자였다. 질문을 던지면 합리적이고 조리 있게 말해 취재진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연락을 넣으면 늘 피드백이 오는 지도자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많은 비난을 감수하고 키움의 감독이 됐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내고도, 계약 연장에 실패했던 장정석 감독의 자리를 뺏었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손혁 감독의 선임 배경으로 당시 허민 이사회 의장과의 인연이 꼽혔다. 확인되진 않았다.

지도자로선 누구나 프로 감독을 꿈꾼다. 단 10개 밖에 없는 자리. 마침내 기회가 왔고, 기회를 움켜쥐었다. 잡고 싶었고, 그래서 잡았을 뿐이다.

손혁 감독은 사퇴 전날까지도 라인업을 고민했다고 한다. 박병호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렸다고도 전해진다. 

2.

키움 구단은 "8일 NC전을 마치고 감독님이 면담을 요청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한번도 사퇴 의사나 뉘앙스를 전한 적이 없어 구단도 당황했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구단의 표현에 따르면 "만류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손혁 감독은 '간곡한 뜻'을 전하고 구단을 떠났다.

3.

그날밤 있었던 일은 당사자만 안다. 손혁 감독이 만났던 하송 대표, 그리고 구단 일을 결정하는 허민 이사회 의장만이 정확한 내용을 알 것이다.

감독은 입이 10개라도 말이 없다. 앞길이 창창한 지도자가 구단과 나눈 속깊은 이야기를 꺼내면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 감독은 '을'이 되기 마련이다. 구단과 감독의 관계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고용인이 피고용인을 넘어서긴 힘들다. 더욱이 이제 막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초보 감독이라면.

그래서 그날 있었던 일을 그저 묻어두고 갈 수밖에 없다. 경질이 자진사퇴로 포장되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살이 더해져도 감독은 말이 없다.

4.

구단은 우승을 원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 더 높은 곳은 정상 밖에 없었다.

박병호, 이정후, 김하성, 서건창, 조상우 등. 투타의 조화가 좋았고,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 만한 전력이었다.

여기에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에디슨 러셀까지 데려왔다. 통큰 투자이자 우승을 하겠다는 각오와도 같았다.

5.

야구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를 관리하고 헤쳐나가는 게 감독의 역할이고, 야구의 재미다.

감독을 잘라 입맛에 맞는 이를 선임하고, 선수를 보강한다고 전력이 급상승 하는 '컴퓨터 게임'이 아니다.

선수에 대한 존중, 현장에 대한 존중이 서야 건전한 팀 문화가 형성되고, 비로소 팀다운 팀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우승에 대한 '자격'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키움은 2008년 창단해 올해로 13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 우승은 없다.

키움 구단에 묻고 싶다. 구단에 건강한 '존중'이 있는지, 우승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인생의 축소판'도 같은 야구를, 그저 단순함 게임으로 치부하고 있다면 권하고 싶다. 이참에 사람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오라고. / 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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