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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죽음의 묵시록

등록 2023.03.10 21:50 / 수정 2023.03.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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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았다. 달팽이가 면도날 위를 기어가는 것을… 그건 악몽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소름이 끼칩니다. 어둡고 끔찍합니다.

베트남전 때 밀림에 은둔한 미군 대령 말론 브랜도는, 병사들을 전쟁의 광기 속으로 몰아넣는 자들을 저주합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다. 높은 놈들. 나는 그들을 증오한다"

대령은, 그를 제거하러 온 대위를 그냥 놔둡니다. 대위가 자신을 죽일 때까지…

대령은, 자살 같은 타살을 당하기 앞서, 가족에게 진실을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나에 대한 진실을 자네가 본 그대로! 거짓을 늘어놓는 것보다 역겨운 건 없으니까…"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는 아득한 거리가 있습니다.

시인 박목월이, 먼저 간 동생의 넋에 말을 겁니다. 답은 없고 바람소리만 들려옵니다.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에워싼 다섯 명의 사람이 명을 다하지 못하고, 줄줄이 비운에 떠나는 것을, 저는 처음 봤습니다. 섬뜩하도록 충격적이어서, 소름이 팔뚝을 쓸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묵시록'이라는 어두운 화두를 떠올렸습니다.

"이재명 때문입니까? 수사 당하는 것이 제 잘못입니까"

이재명 대표는 측근 전 모씨의 죽음을 '검찰의 압박 수사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안 가 유서 내용이 알려졌습니다. 고인은 유서 첫 장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이제 내려놓으십시오. 더이상 희생은 없어야 합니다'

앞선 사람들의 비극과 자신의 극단적 선택을 가리켜 '희생'이라고 했습니다. 그 희생은 바로, 이 대표가 정치를 계속 붙잡고 있어서 이어지고 있다는 부르짖음이 아닐까요. 

이 대표는 두 번째 희생자 김문기씨를 "모르는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김혜경씨 수행비서의 지인이 숨졌을 때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했습니다.

그랬던 이 대표가 전씨를 훌륭한 공무원으로 극찬하면서, 그의 죽음이 전적으로 검찰 탓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검찰은 "전씨를 작년 말 한 차례 조사한 뒤로, 추가 조사도 출석 요구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유족이 더 잘 알 겁니다.

고 이어령 선생은 "한(恨), 그것은 체념해버린 분노, 체념해버린 슬픔"이라고 했습니다. 다섯 사람이 품고 갔을 한을 풀어줘야 할 의무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다면, 죽음 앞에서는 두렵고 삼가는 경외의 마음을 지니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3월 10일 앵커의 시선은 '죽음의 묵시록'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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